1909년 8월부터 10월까지 『소년(少年)』에 연재하였다. 어느 봄날 성(城)의 북반(北半)을 끼고 돌면서 느낀 감흥을 재치 있고 해학적인 필치로 표현하고 있다. 『소년』 편집실에서 정오 조금 못미쳐 출발하여 해가 넘어갈 즈음의 돌아올 때까지 ‘R군’과 함께 겪은 경험들을 흥겹게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동소문 밖으로 나서서 서대문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는데, 성까지 닿는 길을 잘 몰라 성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중도에 몇번 포기하려다가 “길은 가야 없어지는 것이라 사나이답게 분려일번(奮勵一番)하니, 불요불굴(不撓不屈)의 소년 정신을 발휘할 기회가 이때라” 하고 올라가 성줄기에 닿을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가다 보니 어느새 경복궁 뒤 ‘백악산정(白岳山頂)’이 나와 거기에서 ‘조금만 더’의 묘리를 터득했다는 줄거리다. 자연을 감상하면서도 삶의 교훈을 찾아내는 계몽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