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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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인물
일제강점기 「여인의 초상」 · 「해금강 총석정」 · 「자화상」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0년 7월 13일
사망 연도
1978년 9월 20일
출생지
서울
내용 요약

배운성은 일제강점기 「여인의 초상」·「해금강 총석정」·「자화상」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다. 1927년 베를린 예술종합학교 학생전람회에서 3등상을 수상했다. 1935년에는 베를린과 함부르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어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동양의 모필을 사용한 부드러운 표현 효과와 유연한 색상 조화, 그리고 한국의 풍습과 문화를 소재로 한 작품 테마로 유럽 화단의 주목을 끌었다. 1940년 귀국하여 서울에서 운성회화연구소를 운영했다. 1950년에 월북했다. 배운성은 북한의 현대 판화예술사에서 중요한 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정의
일제강점기 「여인의 초상」 · 「해금강 총석정」 · 「자화상」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개설

서울 출생. 1908년 인현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퇴하고 경성중학교의 급사로 있으면서 야학에서 공부하였다. 1905년 백인기 집안의 후원으로 서울 사립중동학교에서 공부했다.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다가 1922년 독일에 건너가 1925년 베를린 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하여 5년 뒤인 1930년에 연구부를 졸업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베를린 예술종합학교 학생시절이던 1927년 학생전람회에서 3등상을 수상하였으며, 같은 해파리의 살롱 도톤느에서 주1 「자화상」으로 입선하였다. 1930년 예술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학교의 우등생으로 추천되어 학교에서 작품 제작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화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베를린 쿠틀리트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으며, 이 전시를 계기로 독일 문화원 미술분과 회원이 되었다.

이듬해 폴란드 바르샤바 판화협회의 초청으로 개인전을 가졌으며, 네덜란드 하크 시립미술협회에서 수채화 개인전,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립미술협회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1933년에는 폴란드의 바르샤바 국제미전에 「밀림」, 「여인의 초상」, 「자화상」을 출품하여 1등상을 수상하였다. 1935년에는 베를린과 함부르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어 평단의 주목을 받았고, 1936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배운성은 여러 전시회에 유화, 수채화, 목판화, 수묵화를 출품하였으며, 동양의 주2을 사용한 부드러운 표현 효과와 유연한 색상 조화, 그리고 한국의 풍습과 문화를 소재로 한 작품테마로 유럽 화단의 주목을 끌었다.

1937년부터는 파리에 정착하여, 1938년 파리 그랑 팔레에서 개최된 살롱 전에 유화 10점, 데생 2점, 목판화 4점을 출품하여 모두 입선하였다. 또한 당시 세계적인 화랑으로 평가되는 샤르팡티에 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1940년 서울로 돌아 온 뒤 을지로에 운성회화연구소라는 화실을 운영하였다. 이 시기에는 일제의 주3 선전을 위한 무용극 「부여회상곡」의 무대미술과 의상을 담당하였고, 친일미술가단체인 조선미술가협회 참여, 징병제 실시를 기념한 신문삽화 게재, 전쟁의식 강화를 위한 『결전미술전람회』 출품 등의 친일활동을 하였다.

귀국 후 4년 뒤인 1944년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같은 해 이종우, 김환기, 이쾌대 등과 『유채화 10인전』에 참여하였다. 해방 후 1948년에는 그동안 국내에서 제작한 전국 곳곳의 풍경화들과 널뛰기 등의 풍속화로 개인전을 가졌으며, 홍익대학에 창설된 미술과의 초대 학과장으로 취임하였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는 서양화부 추천 작가 및 심사 위원으로 참가하면서 유화 「성호(聖號)」를 출품하였다.

1950년에는 9·28 서울 수복 직전 북한으로 넘어갔으며, 1956년까지 평양미술대학의 출판화 강좌 상급교원을 지냈다. 1957년 이후에는 국립미술출판사 소속화가로, 1959년 이후에는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현역미술가로 활동하였다. 1963년부터 사망할 때까지는 신의주에서 활동하였다. 북한에서 배운성은 북한의 현대 판화예술사에서 중요한 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남한에는 1940년 무렵의 유화 「해금강 총석정」이 현존한다.

참고문헌

『한국근대회화선집』-북으로 간 화가들(금성출판사, 1990)
「배운성의 유럽체류시기 회화 연구(1922∼1940)」(김미금,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배운성-첫 유럽유학생의 생애와 작품-」(김복기, 『월간미술』, 1991.4.)
「배운성-베를린생활 16년의 발자취-」(프랑크 호프만, 『월간미술』, 1991.4.)
주석
주1

목판에 새겨서 찍은 그림. 우리말샘

주2

짐승의 털로 만든 붓. 우리말샘

주3

일본과 조선은 한 몸이라는 뜻으로,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조선인의 정신을 말살하고 조선을 착취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구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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