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고종 3) 당시 철산부사(鐵山府使)로서 재직하던 중에 미국상인 인 프레스톤(Preston) 등이 제너럴셔먼호(General Sherman號)를 타고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서 통상을 요구하다가 오히려 중군(中軍) 이현익(李玄益)을 감금하는 등 만행을 부리자 평안도관찰사 박규수(朴珪壽)와 평양서윤(平壤庶尹) 신태정(申泰鼎) 등과 의논한 끝에 화공으로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웠다.
그뒤 1878년 제주목사로 재임할 때 제주지방의 극심한 가뭄으로 인하여 피해가 심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훌륭한 진휼정책을 행하여 목민관으로서 소임을 다하였다. 1881년 영선사(領選使) 김윤식(金允植)과 학도(學徒) 25명 및 공장(工匠) 13명을 포함한 총인원 69명으로 청나라에 군기제조의 학습을 위하여 떠난 영선사행(領選使行)의 관변(官辨)의 일원으로 따라갔다가 귀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