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달성(達城). 서명순(徐明淳)의 아들로 서기순(徐冀淳)에게 입양되었다.
1886년(고종 23) 육영공원(育英公院)이 설치되자 주사(主事)로 있다가 그뒤 내무부부주사가 되었다. 1892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교리가 되었다.
같은해 주차톈진종사관[駐箚天津從事官]으로 청국에 가서 근무를 하다가 1894년 상해에서 김옥균(金玉均)이 암살당하자 당시 독리통상사무(督理通商事務)로서 그 시체를 가지고 귀국하였다.
1896년 장례(掌禮)가 되고, 1897년 인천감리(仁川監理)와 장례원상례(掌禮院相禮), 1905년 시종원부경(侍從院副卿)과 궁내부특진관, 그리고 봉상사제조(奉常司提調), 1907년 인천재판소판사 등을 지냈고 1910년 정2품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