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계도기총수록(法界圖記叢髓錄)』은 의상(義湘, 625~702)의 『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와 이에 대해 의상의 문손(門孫)들이 한 해석, 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문헌의 구절을 수록한 책이다. 편자는 미상이나, 13세기 중반에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재조장경(再雕藏經)의 간행에 관여했던 천기(天其)를 중심으로 편찬되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현재 존재하는 목판은 1254년(고종 41)에 『고려대장경』의 보유판(補遺版)으로서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개판(開板)된 것이다.
『법계도기총수록』은 『일승법계도』의 원문을 싣고, 다음에 「법융기(法融記)」 · 「진수기(眞秀記)」 · 「대기(大記)」 등 신라시대 주석서의 해석을 싣고 있다. 「법융기」는 법융(法融)이 쓴 주석서로 추정되며, 총 47회 수록되어 있다. 법융은 의상(義湘), 상원(相元), 신림(神琳), 법융으로 계승되는 의상의 문손이다. 「진수기」는 24회 수록되어 있는데, 그 저자로 생각되는 진수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또 「대기」는 54회 수록되어 있는데, 마찬가지로 누구의 저술인지 알 수 없다.
이 책은 『일승법계도』의 내용을 네 단락으로 나누어서 상권의 1에 『일승법계도』의 대의(大意)와 법계도인(法界圖印)에 대한 해설을 수록하였다. 상권의 2에는 석문(釋文) 중에 총석인의(總釋印意) 전체와 별행인상(別行印相) 중의 인문상(印文相)과 자상(字相)을 수록하였고, 상권의 3에는 석문의(釋文意) 중의 자리행(自利行), 이타행(利他行)과 수행 방편까지가 실려 있다. 상권의 4에는 득이익(得利益)과 총결(總結)에 대한 해석을 수록하였다.
『법계도기총수록』에 수록된 『일승법계도』 원문의 제목은 ‘일승법계도합시일인오십사각이백일십자(一乘法界圖合詩一印五十四角二百一十字)’이다. 『법계도기총수록』에 수록되어 있는 『일승법계도』와 일본에서 유통된 사본을 저본(底本)으로 하는 『대정신수대장경』 권45, 『한국불교전서』 제2책본의 『화엄일승법계도』는 서로 다른 부분이 적지 않다. 그중 『법계도기총수록』에 수록된 『일승법계도』는 오탈자와 누락된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다.
본서에 수록된 주석서들은 의상과 직계 제자들 사이의 문답을 비롯하여 2대, 3대, 4대에 이르는 의상대사 문손들의 『법계도』를 통한 화엄(華嚴) 교학 연찬(硏鑽)을 보여줌으로써, 신라 말에 이르기까지 의상의 화엄사상이 활발하게 연마되고 계승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본서에 나오는 『도신장(道身章)』은 의상의 제자인 도신(道身)이 의상의 강의 내용을 수록한 것이고, 『지통기(智通記)』는 역시 의상의 제자인 지통(智通)이 의상의 강의를 필기한 것으로 『추동기(錐洞記)』로 알려진 중요한 저술이다. 그 밖에 『자체불관론(自體佛觀論)』 · 『간의장(簡義章)』 · 『관석(觀釋)』 등 신라의 화엄 관련 저술이 많이 인용되어 있어, 『법계도기총수록』은 자료적 가치가 높다.
이 책을 통해서 『일승법계도』에 대한 연구가 의상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법계도기총수록』은 의상과 그 문손들의 화엄 관련 저술들이 다수 인용되어 있어 신라 화엄사상의 전체적인 면모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