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누가 창건했는지 알 수 없다. 고려 태조가 대경 여엄(大鏡 麗嚴)을 맞아 설법을 듣고, 그를 이 절의 주지로 봉했다. 930년(태조 13) 여엄은 이 절에서 입적했다. 그 뒤의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1407년(태종 7) 조정에서 조계종의 자복사찰(資福寺刹)로 삼았으며, 당시의 이름은 보리갑사(菩提岬寺)라 하였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존재한다고 나와 있으나,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이미 폐사되었다고 나와 있다.
절터에는 석축과 기와 조각, 도자기 조각이 산재해 있다. 또한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대경대사현기탑비와 전 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이 있었는데, 1920년 무렵 일본인이 절터에서 모두 반출해 갔다.
939년(태조 22)에 세워진 대경대사현기탑비는 서울 경복궁에 옮겨져 보관되고 있으며, 석조부도는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석조부도는 대경대사현기탑비와 견주어 볼 때 여엄의 부도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