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천리에는 3개소의 고인돌군이 분포하고 있었는데, 그중 2개 군이 1987년 주암댐 수몰지구 발굴 때 조사되었다.
시천리 ‘가’군 고인돌은 복내면 시천리와 문덕면과의 경계선상에 위치한다. 모두 23기 중 14기가 건국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조사되었다. 고인돌은 대부분 땅에 밀착된 상태로 있었으며 파괴된 것도 많았다.
덮개돌의 크기가 1∼2.8m로 소형이며 고인돌군의 방향은 북동∼남서로 3줄을 이룬다. 하부구조는 작은 할석과 잔자갈을 이용해 돌덧널을 만들거나, 고임돌을 타원형으로 두른 돌돌림형[圍石形]이며, 무덤방의 윤곽을 파악하기 힘든 것도 많았다. 출토유물은 석검자루편과 무문토기 저부편이 있다.
시천리 ‘나’군 고인돌은 시천리 살치마을 안에 위치한다. 총 19기 중 16기가 목포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조사되었다. 고인돌군의 방향은 ‘가’군과 같은 북동∼남서로 3렬을 이루고 있었으며 보성강의 흐름과 일치한다.
하부구조는 크게 2개의 유형으로 나뉜다.
한 유형은 돌돌림형으로 덮개돌 아래에 고임돌을 타원형으로 두른 것으로 보성강유역과 남해안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형식이다. 다른 유형은 돌널형 혹은 돌덧널형으로 덮개돌 아래에 판석을 이용하거나 할석을 이용해 무덤방을 만드는 형식인데 가장 일반적인 형식이다.
특히, 제6·7호 고인돌은 무덤방 주변에 돌무지[積石]를 넓고 정연하게 깔고 있어 특징적이다. 출토유물은 무문토기 저부편, 붉은간토기[赤色磨硏土器]편 등과 석검·석촉(石鏃)·유구석부(有溝石斧) 등이 있다.
시천리 ‘다’군은 시천리 살치마을에서 남서쪽으로 800m 떨어진 시천제(詩川堤) 아래의 논두렁과 구릉에 위치한다. 모두 5기의 고인돌이 산재해 있다.
이들 시천리 고인돌은 대부분 발굴 조사된 후에 수몰되었으나 이 지역의 청동기문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