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면천(沔川). 복위룡(卜渭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복한(卜僴)이며, 아버지는 복오(卜吾)이다.
1451년(문종 1) 증광시(增廣試)에서 생원이 되었고, 1465년(세조 11)에 식년 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예문관 봉교(奉敎) 등을 역임하다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1472년(성종 3)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 김영유(金永濡)가 복승정을 효행으로 추천하였고, 복승정은 관직에 탁용(擢用)되는 포상을 받았다.
1474년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이 되고, 같은 해 왜인의 침입을 막지 못한 관압사(管押使) 장유성(張有誠)을 다른 인물로 대치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1479년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이 되었는데, 명확한 논변으로 죄인에 대한 처벌을 주장하여 왕으로부터 신임을 받았다.
그 뒤 광흥창수(廣興倉守)를 거쳐 1488년(성종 19)에 이천부사(利川府使)에 임명되었다. 이천부사 재직 시 선정을 베풀어 1493년 임기가 만료되었을 때 이천 부민들이 연임을 요청하는 상언(上言)을 올렸다. 이에 성종이 경기 관찰사에게 복승정의 공적을 조사하여 보고하도록 했으며, 후에 그 공적을 인정받아 당상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