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노래』는 1925년 9월 김억이 매문사(賣文社)에서 「가랴나」 등의 시, 「자야오가(子夜吳歌)」 등의 번역시, 「제비」 등의 동요 등 모두 77편의 시를 수록하여 발표한 시집이다. 이 중 창작시는 김억이 외국시의 영향에서 벗어나서 향토적 서정시 창작을 모색하던 과정의 산물이다. 김억의 향토적 서정시는 후일 『안서시집(岸曙詩集)』(1929)을 통해 구체적 성과로 나타난다. 따라서 『봄의 노래』는 김억의 첫 창작 시집인 『해파리의 노래』(1923)에서 『안서시집』에 이르는 시인 김억의 도정에서 분기점에 해당한다.
김억(1895~미상)은 일제강점기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1921), 창작 시집 『해파리의 노래』(1923) 등을 저술한 번역가, 시인, 문학평론가이다. 김억은 시인으로서 『해파리의 노래』 등 모두 여섯 권의 창작 시집을 발표했다. 『봄의 노래』는 김억의 세 번째 창작 시집이다.
『봄의 노래』는 크기는 A6 판이고 면수는 132면이다. 『봄의 노래』 이전 김억이 『금모래』(조선문단사, 1925.3.20.)를 간행했다고 하지만, 이 시집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봄의 노래』는 사실상 김억의 두 번째 시집으로 본다.
『봄의 노래』에는 김억이 쓴 「자서(自序)」가 실려 있다. 이 글에서 김억은 마치 첫 시집 『해파리의 노래』를 가리키는 듯이 당시까지 쓴 시가 외국시의 시상을 가져다가 자기 나름대로 표현한 것일 뿐이었다고 고백한다. 또 이 시집 역시 일부 창작시가 있지만 대부분 남의 것을 마음대로 옮긴 역안(譯案), 즉 번안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앞으로 단념적(斷念的)인 애상에서 벗어나서 빛과 밝음의 정서를 표현하겠다고 다짐한다.
이후 제1부 ‘봄의 노래’에는 「가랴나」 외 10편, 제2부 ‘술노래’에는 「술노래」 외 10편, 제3부 ‘황혼의 노래’에는 「잊어버립시다」 외 7편, 제4부 「자야오가(子夜吳歌)」에는 이백(李白)의 「자야오가」 외 5편, 제5부 ‘따님의 노래’에는 「따님의 노래」 외 15편, 제6부 ‘제비의 노래’에는 「제비」 외 24편 등, 모두 6개 장에 132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제4부 ‘자야오가’의 시들은 분명히 작가와 원시까지 소개한 한시(漢詩)의 번역이다. 또 제6부 ‘제비의 노래’의 시들은 동요이다.
『봄의 노래』는 김억이 시인으로서 습작기를 지나 자신만의 시 세계를 모색해 나아가는 과정의 시집이다. 실연과 이별, 상실과 조락의 정서를 주조로 하는 점은 『해파리의 노래』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자연과 향토적 인정세태를 제재로 삼고자 한 점, 연 단위의 형식적 일치를 통한 리듬을 실험하고자 한 점은 분명한 차이를 나타낸다. 이것은 제6부 ‘제비의 노래’의 동요 작품들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김억의 이러한 모색은 후일 논설 「밟아질 조선 시단의 길」(1927)을 통해서 시가 개량의 방법론으로 구체화되고 『안서시집』(1929)를 통해 결실을 맺는다.
그래서 『봄의 노래』는 김억이 서문에서 고백한 것처럼 여전히 『해파리의 노래』에서 흔히 보이는 것처럼 제재와 주제, 수사와 형식의 차원에서 외국시의 모방작이라고 할 만한 사례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제2부의 「술노래」의 제2연은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1921)에 실린 Y. B. 예이츠(Yeats)의 「술노래」와 매우 흡사하다. 또 제3부의 「잊어버립시다」는 사라 티즈데일(Sara Teasdale)의 「잊어버립시다(Let it be forgotten)」의 번안이다.
한편 제4부의 한시 번역은 김억이 창작시의 전범을 유럽 중심의 외국시에서 당시(唐詩) 중심의 한시로 옮기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김억이 서문에서 제4부의 작품들이 창작도 번역도 아닌 번안이라고 밝힌 것은 그 증거이다. 김억은 이후 『안서시집』의 「잔향(殘香)」 장에 수록한 한시들에서 번안과 창작의 경계마저 지우기에 이른다.
김억은 이후 『안서시집』(1929), 『안서시초』(1941), 『먼동 틀 제』(1947), 『안서민요시집』(1948) 등 모두 네 권의 창작 시집을 더 발표한다. 이 중 『안서시집』은 김억의 시인으로서의 절정기의 재능이 집약되어 있다. 그래서 『봄의 노래』는 한편으로는 시인 김억의 습작기를 벗어나려는 모색을 반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문학적 도약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봄의 노래』는 번역가 김억이 서양시에서 한시로 경도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 결실은 번역 시집 『망우초』(1934)로 나타난다.
또 김억의 동요 창작은 김억이 1929년 조선가요협회를 통해 시의 음악화로 나아갔던 사정을 예고한다. 특히 제1부의 「가랴나」는 1940년 작곡가 나운영에 의해 예술 가곡으로도 발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