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신암리 고분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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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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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내용

자연촌락인 평전말·새터말·배비당골·오리나무골·보갑동의 문덕골 등 모두 5지역으로 나뉘어 분포되어 있다. 모두 100여 기 정도로서 할석조(割石造)와 판석조(板石造)가 반반씩 혼재되어 있다.

평전말에 있는 고분군은 모두 40여 기로서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 200∼300m 거리에는 비교적 큰 석성천(石城川)이 동쪽으로 흐르고 있다. 이 하천을 따라 가늘고 긴 계곡이 동쪽으로 계곡평야를 이뤄 초촌(草村)의 대평야로 연결된다. 고분군의 남쪽 가까이에는 청마산성(靑馬山城)이 위치해 있다.

고분의 매장 주체시설은 석실분(石室墳)으로 비교적 판석조가 많다. 대표적인 판석조석실분의 경우 고분의 방향은 정확히 남쪽을 향해 있다. 현존한 현실(玄室)은 너비 1.32m, 벽 높이 81㎝, 천장 높이 1.31m이다. 천장 형식은 꺾임천장〔平斜天障〕이다.

새터말에 있는 수십 기의 고분군도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모두 석실분으로 할석조가 많은 편이다. 지형이나 주위 환경은 평전말과 비슷하다. 배비당골·오리나무골에도 산 중턱에 수십 기의 석실분이 있다. 역시 할석조가 많은 편이다.

보갑동의 문덕골에도 수십 기가 있는데, 판석조석실분이 비교적 많다. 지형이나 환경은 다른 마을에 있는 고분군과 거의 비슷하다. 보갑동고분은 서쪽으로 약 60°가량 기울어진 서남향이다.

묘실(墓室) 전체 길이는 3.59m이다. 현실은 길이 3m, 너비 1.14m, 벽 높이 86㎝, 천장 높이 1.35m이다. 연도는 길이 59㎝, 너비 78.5㎝, 높이 57㎝이다. 천장은 꺾임천장인 판석조석실분이다.

신암리에 있는 고분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할석조석실분은 산이나 구릉의 비교적 상부에 자리잡고 판석조석실분은 그 하부에 자리잡는 수가 많다. 이것은 고분의 편년과도 관계가 깊다.

또한 보갑동고분이나 평전말고분에서처럼 꺾임천장식은 부여 지방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 형식이다. 이것은 백제의 부여천도에서부터 멸망에 이르기까지 존속했던 천장형식이다. 신암리의 것은 그 중에서도 후기에 속한다.

한편, 신암리에서는 또 화장묘에 쓰였던 골호(骨壺)가 발견되었다. 당시 판석조석실분 등은 권력층 내지 부유층의 묘제로 사용된 반면, 일반서민들은 호관묘(壺棺墓)를 널리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부여 초촌면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백제 고분들은 그 재료상 대부분 할석과 판석을 이용하여 축조한 예가 대부분이며, 형태는 맞조임식 구조를 하고 있는 것과, 평사천정의 단면육각형의 횡혈식 판석조 석실분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부여지방에서 확인된 다른 고분들과 구조나 형태상 매우 비슷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백제고분 형식에 대한 전반적 상황으로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을것으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부여백제고분 지표조사Ⅱ』(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1997)
『백제고분연구(百濟古墳硏究)』(강인구, 일지사(一志社),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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