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은 비교적 잘 다듬어져 있는데, 3·4조와 4·4조가 주조를 이루며 전체 분량은 2율각 1구로 세어 282구이다. 『증참의공적소시가(贈參議公謫所詩歌)』에 실려 있다.
저자는 벼슬살이에 뜻이 없어 시골에 숨어 살고 있었는데, 숙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큰아버지 진유(眞儒)가 역률(逆律)로 처형된 뒤 25년이 지난 1755(영조 31년)에 나주괘서(羅州掛書)의 변이 일어나자 소론(少論)의 원로대신이었던 진유의 조카라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갑산으로 귀양가게 되었다.
이 작품은 “가련타 묘여일신 텬지간의 뉘비ᄒᆞᆯ고”로 시작하여 “아마도 우리셩군 효니하의 명츈은경 미츠쇼셔”로 끝맺고 있는데, 유배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면서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염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신임사화(辛壬士禍)의 후유증과 피해 대중의 참담한 당시의 사회 현실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원본은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