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 화악 지탁(華嶽知濯, 1750~1839)은 편양파(鞭羊派) 함월 해원(涵月海源)- 완월 궤홍(翫月軌泓)으로 이어지는 법맥 계보를 한암(寒巖)으로부터 전해 받았다. 황해도 배천 강서사(江西寺)의 성붕(性鵬)에게 출가했고, 삼각산 인근에서 활동하여 별호를 삼봉(三峰)이라 했으며 금강산과 보개산에서도 주석(駐錫)했다. 교학에 정통하여 『능엄경』을 만 번 읽었다고 하며, 시문에도 뛰어났고 김정희(金正喜)와 오래 교류했다. 금강산 장안사(長安寺)의 지장암에서 입적했고, 전법(傳法) 제자로는 화담 경화(華潭敬和, 1786∼1848)가 있다.
1권 1책. 목판본. 문손(門孫)인 보월 혜소(寶月慧昭)가 편집하여 1869년(고종 6) 양주 천마산 보광사(普光寺)에서 개간하였다. 혜소는 천마산인(天磨山人)이라고도 했는데 선 논쟁을 촉발시킨 백파 긍선(白坡亘璇, 1767∼1852)의 『수선결사문과석(修禪結社文科釋)』의 발문을 쓰고 1860년에 양주 봉인사(奉印寺)에서 간행하기도 했다.
이 책의 처음에는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서문이 나온다. 이유원은 고종대에 영의정을 역임했고, 1882년 전권대신으로 제물포 조약에 조인한 이로서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대대로 살았다.
본문 첫머리에는 일종의 「유산기(遊山記)」 3편이 나오는데, 먼저 「행각록(行脚錄)」에는 저자가 전국의 명승지와 사찰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보고 느낀 바를 적어 놓은 것으로 시도 들어 있다. 「백두산기(白頭山記)」에서는 백두산의 자연과 역사 유적 등을 서술했고, 「천불산록(千佛山錄)」에는 설봉산 석왕사(釋王寺)와 순천 송광사(松廣寺) 등의 사찰이 언급되어 있다. 시는 7언 및 5언으로 된 율시와 절구로 54편이 실려 있고, 다음으로 저자가 지은 35편의 산문이 나온다. 「금강산유점사설선당중건기(金剛山楡岾寺說禪堂重建記)」, 「유점사법당불량록서(楡岾寺法堂佛量錄序)」, 「신계사유마암신건기(神溪寺維摩庵新建記)」, 「마하연중건기(摩訶衍重建記)」 등 금강산 일대 사찰의 역사와 불사 현황을 담은 글, 「조상경증정서(造像經證正序)」, 「조상경고증발(造像經考證跋)」 · 「천경집서(天鏡集序)」 등의 서문이 포함되어 있으며, 서간문은 제자인 화담 경화, 영허 선영(暎虛善影, 1792-1880) 등 승려와 주고받은 편지글이 다수이다.
본문에 이어 이유원이 지은 영찬(影讚)과 김정희가 쓴 법상찬(法像贊), 그리고 취벽(翠碧) 이도현(李道玄)이 찬한 지탁의 행장이 있다. 끝으로 이 책의 편자인 제자 혜소가 쓴 발문이 있는데, 지탁의 문도를 수법(受法), 수선(修禪), 수계(受戒)로 나누어 기재했다. 경화는 수법, 선영은 수선 제자에 올라가 있다. 경화는 양주 화양사(華陽寺)에서 출가한 후 금강산 등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말년에 가평 현등사(懸燈寺)에서 입적했고, 선영은 양주 수락산 학림암(鶴林庵)에서 출가하고 석왕사(釋王寺)에서 입적했으며 『 역산집(櫟山集)』을 남겼다.
이 책의 말미에는 부록으로 지탁의 제자 화담 경화에 대한 글들이 실려 있는데, 이유원이 지은 부도비명(浮屠碑銘)에 이어 이유원, 김정희, 보월 혜소가 쓴 영찬, 그리고 혜소가 적은 행장이 들어 있다.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에 북한산 유역에서 활동한 화악 지탁의 문집으로 서울 근교 불교계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