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사는 북한 황해남도 배천군 운달산(雲達山)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이다. 도선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견불사·영운사·영은사라고도 불렀다. 1092년(현종 9) 선종의 왕태후가 이곳에서 천태종 예참법(禮懺法)을 1만 일 동안 열었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천태종의 종찰(宗刹)이었던 국청사(國淸寺)와 깊은 관련이 있었던 절임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중창하였고, 1651년(효종 2) 다시 소실되었으나 4년 뒤 중창하였다. 당우로는 법당인 대웅전과 승당이 있고, 문화재로는 칠층석탑이 있다.
언제 창건하였는지 불분명하나, 신라 말 고려 초의 고승 도선(道詵)이 양씨(梁氏) 성을 가진 부자에게 권하여 그 집을 절로 삼았다고 한다. 예성강의 서쪽에 있기 때문에 강서사라 하였고, 절에서 주위를 보면 부처를 보는 듯한 경치라 하여 견불사(見佛寺)라고도 하였다. 영운사(靈雲寺) · 영은사(靈隱寺)라고도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성불사(成佛寺)의 말사였다.
고려 때에는 대각국사 의천의 제자로 경전에 밝고 시문에도 능했던 혜소(惠素)가 주지로 있었기 때문에 김부식(金富軾) 등을 비롯한 시인 주1들이 자주 찾았다. 1092년(현종 9)에는 선종의 왕태후가 이곳에서 천태종 예참법(禮懺法)을 1만 일 동안 열었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천태종의 종찰(宗刹)이었던 국청사(國淸寺)와 깊은 관련이 있었던 절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의 세조는 원각사(圓覺寺)에 있던 주2을 이 절에 옮겨 두었다고 한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주3, 1651년(효종 2) 다시 소실되었으나 4년 뒤 중창하였다.
1877년에 강서사에 봉안하고 있던, 나옹화상이 직접 만들었다는 지장보살삼존상 등을 배로 실어가 왕실의 후원으로 새로 건립되었던 서울 화계사 명부전에 안치하였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화계사 명부전의 지장보살 복장 발원문이 발견되면서 이 불상들의 원래 봉안처가 강서사이며 화승(畵僧) 영철(靈哲) 등이 1649년(인조 27)에 제작하였음이 확인된 바
당우주4로는 법당인 대웅전과 승당(僧堂)이 있다. 대웅전은 1662(현종 3)∼1722년(경종 2) 사이에 중창한 정면 5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약한 배흘림기둥에 조선시대 금모로단청이 잘 남아 있다. 경내에는 7층석탑이 남아 있다. 7층석탑은 고려 때 세운 것으로 기단부 하대 중석에 새긴 연화문과 상대 중석의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비롯하여 각층의 옥신(屋身)에는 불좌상이 새겨진 화려한 탑이다. 이 밖에도 뜰 앞에 다층의 석탑이 한 기 더 있으며, 대웅전 동쪽 약 200미터 거리에 사적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