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義天)의 제자로서 내외전(內外典)에 해박하고 시문 및 필법에도 능하였다. 항상 의천을 사사하여 그의 고제가 되었는데, 의천의 처소에 따라다니면서 문장을 토론하였다. 의천이 승과에 응시하도록 권하였을 때, “제가 어찌 임금님 마구간의 말이 되어 빨리 달리기 시합을 하겠습니까?” 하였다.
왕이 그의 명성을 듣고 내도량(內道場)으로 불러 『화엄경』을 강의하게 하고, 많은 백금을 하사하였다. 서호(西湖) 견불사(見佛寺)에서 살 때 조용히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렸고, 김부식(金富軾)이 나귀를 타고 자주 방문하여 날이 저물도록 도를 담론하였다.
이자연(李子淵)이 창건한 감로사(甘露寺)에 시를 지었고, 이자현(李資玄)의 제문 및 「금란총석정기(金蘭叢石亭記)」를 지었다. 의천의 행록 10권을 지었고, 김부식은 이를 토대로 의천의 비명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