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는 802년(애자왕 3)에 순응(順應)이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는 그 규모가 작았다. 약 100년이 지난 897년 가을에 다시 중창할 것을 합의하고 90일 동안 참선한 뒤 3층의 집을 짓고 4층의 누를 올려 사역을 크게 확장하였다.
이에 최치원은 898년 정월에 기문을 써서 그 연유를 밝히고, 해인사를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좋은 명당에 우뚝 솟은 옥 같은 사찰이라고 한 뒤, 마음을 깨끗이 하고 계(戒)로써 걱정을 방지하여 잡귀의 방해를 피해야 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이 도량기는 신라 말의 불교사 및 해인사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