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신리 너와집과 민속유물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너와집 형태의 주택이다. 1975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너와집 2개 동과 이에 딸린 통방아·김치독·화티·설피 등이 함께 지정되어 있다. 너와집은 우리나라 산간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옥이다. 너와·새·굴피 따위의 특이한 재료로 지붕을 이었다. 또 조명과 불씨의 보존을 위한 시설인 화티가 설치되어 있다. 집의 평면 구성은 함경도 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겹집 양식이다. 너와집은 건축 기법이 간단하여 집의 발달 과정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1975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국유의 너와집 2개 동과 이들 집에 딸린 통방아 · 채독 · 김치독 · 화티 · 설피 · 창, 윤영원(尹永源) 소유의 물레방아, 김해명(金海明) 소유의 코쿨 · 주루막이 지정되어 있다. 이 집들은 우리나라 산간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옥이다.
지붕은 너와 · 새 · 굴피 따위의 특이한 재료로 이었으며, 조명과 불씨의 보존을 위한 시설인 화티가 설치되어 있다. 평면 구성은 함경도 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겹집 양식을 보이며, 건축 기법도 매우 간단하여 우리네 집의 발달과정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너와는 느에 또는 능에라고도 하는데, 지름이 20㎝쯤 되는 붉은 소나무를 길이 60∼70㎝로 잘라, 이것을 세워서 도끼로 쪼갠 작은 널빤지를 이른다.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가로 20∼30㎝이고, 두께는 5㎝ 정도이다. 너와는 70장을 한 동이라고 하는데, 한 칸 넓이의 지붕에는 한 동 반에서 두 동이 든다.
너와는 용마루에서부터 맞물리도록 덮어나가므로 반 이상의 길이가 안쪽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2, 3년이 지나면 빼내어 바꾸어 끼우기도 한다. 바람에 날리기 쉬우므로 군데군데 돌로 지질러두어야 한다. 수명은 5년 가량이다.
윤영원의 집은 외줄집으로 정주간 우측에 방을 드렸으나, 일반적으로는 이곳에 마구간(외양간)을 둔다. 뒷방과 아랫방은 통고래로 되어 있으며, 아랫방에서는 윤영원 부부가, 윗방에서는 그들의 자녀가 기거한다. 사랑방은 그의 부모가 쓴다. 김진호의 집은 100년 이상 된 옛집으로 한 용마루 아래 방이 두 줄로 배치된 겹집이다.
팔작지붕에는 너와를 덮었으며, 좌우의 합각에는 채광과 배연(排煙)을 위한 까치구멍을 내었다. 이 구멍은 겹집 특유의 것으로, 까치가 드나들만한 작은 구멍이라는 뜻이나 큰 집에서는 유리문을 달기도 한다. 본디 북부형 겹집에는 마루가 없으나( 정주간이 마루의 기능을 대신한다), 이 집처럼 전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강원도 산간집에서는 반드시 중앙부에 마루를 둔다.
마루가 설치되면 여름에 지내기 편리하고 독립성이 강한 사랑방 · 샛방 · 안방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리고 사랑방 전면과 마루쪽에도 툇간이 설치되어 방의 기능이 확대되었다. 마구간을 건물 안에 부속시킨 것은 추위로부터 가축을 보호하는 동시에 귀중한 재산을 지키려는 목적에 의한 것이다.
봉당은 작업장으로도 쓰며 도장에는 곡식 가마 따위를 갈무리한다. 뒷간을 남녀가 따로 쓰도록 반으로 나눈 점이 주목된다. 사랑방과 안방 구석에 시설된 고콜은 원시적인 조명 시설로 강원도에서는 코쿨 또는 코쿠리라고도 한다.
방바닥에서 40㎝쯤 되는 높이에 널쪽(뒤에 흙을 두껍게 덮거나 돌을 깔아둔다.)을 양벽의 귀에 맞도록 대고 이에 의지하여 위로 올라갈수록 좁게 흙으로 쌓아 올라가며 천장 바로 밑에서 바깥쪽으로 낸 구멍에 연결시켰다(이것이 굴뚝의 구실을 한다.). 한편, 널빤지 위쪽에는 가로 20㎝, 세로 15㎝쯤 되는 구멍을 뚫어놓고 저녁에는 이곳에 관솔불을 지펴서 방안을 밝힌다.
본디 조명이 목적이나 난방의 구실도 겸하여 어린이들은 이 불에 감자나 고구마를 익혀 먹기도 한다. 강봉문의 집은 김진호의 집에 비하여 윗방이 사랑방 북쪽에 배치되는 대신 마루의 면적이 그만큼 넓어졌으며, 마구간이 건물 전면으로 돌출하였다. 이 집의 마구간의 위치는 주목할만한 것으로, 이 공간이 몸채에서 떨어져나가는 과정을 보이는 좋은 보기이다. 겹집의 분포 지역이 경상북도쪽으로 남하함에 따라 마구는 독립되는 경향을 나타낸다.
3대가 한집에서 생활할 때는 윗방을 신혼부부가 쓰는 것이 보통이나, 장성한 자녀가 기거하는 일도 있다. 정주 부뚜막 옆의 화티는 정주의 조명과 불씨의 보존을 위한 시설이다. 높이는 70㎝쯤 되며 상부는 우뚝하게 파놓았고, 이와는 별도로 아래쪽 전면에 아궁이의 입구처럼 구멍을 내었으며 상하부의 중간은 차단시켰다.
상부의 구멍에는 관솔불을 켜두며 경우에 따라서는 뜬숯을 모으거나 음식을 끓이기도 한다. 그리고 아래 구멍의 재 속에 불씨를 묻어두며 이 위에 불돌을 얹어서 꺼지지 않도록 한다. 예전에는 불씨를 부젓가락으로 집어서 낙엽에 싼 다음 입으로 훅훅 불어서 불을 살렸다. 따라서 무엇보다 이 불씨를 보존하는 일이 주부의 큰 임무였으며, 이 불을 꺼뜨리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신까지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