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연대는 조선 말 내지 그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4음보 1구로 헤아려 모두 188구로 그 중 3·4조가 86구, 4·4조가 84구, 2·3조와 2·4조가 각 7구, 3·2조가 2구, 3·3조와 4·3조가 각 1구씩으로 되어 있다.
꿈에도 잊지 못할 연인에 대한 극진한 애정을 펴보인 연서(戀書)의 성격을 띤 가사로서 남자가 지어 여자에게 보낸 것이다.
지은이가 남자라는 점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저도 나고 나도 나서”, “가련한 이내 몸이 널로 하여 죽어지면”, “널로 하여 생겻든지 널로 하야 못 살겠다. 널로 하여 죽게 되니 절로는 살 길 없다.”, “내 널 그려 끈튼 애를 네 날 그려 끈허 보렴” 등의 표현이 우리의 사회 관습상 여인쪽에서 남성에게 보낸 글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보면 반갑고 못 보면 그리워라.”로 시작하여 “할 말씀 무궁하나 대강 사정 기록하야 임 좌하에 부치나니 이를 보면 아로리라. 내 진정 내 사정을 이 글 보고 웃지 마소.”로 끝맺고 있는 이 작품은 같은 성 안에 살면서도 밤낮으로 그리워하며 애태우는 짝사랑의 애틋한 정을 중국의 고사와 한문 숙어를 많이 사용하여 극진한 자기의 진정(眞情)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
“반야산 가자 하니 마고집 머러 잇고 서왕모 차자가나 청조새 아득하다.”라든가 “연모지설은 장재이변하고 화월지태는 암유안중이라.”라고 한 것이 그 보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