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판의 출현은 서원이 생겨나기 시작한 16세기 중기 이후부터이며, 초기에는 종수가 극히 적었으나 서원의 발달과 더불어 판종도 점차로 증가하였다.
서원의 효시인 소수서원(紹修書院:白雲洞書院)이 1543년(중종 38)에 창건된 이래 서원의 건립이 날로 증가하여 수가 650여 개에 이르렀고, 그 중 사액서원(賜額書院)만도 260여 개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서원의 급격한 증가는 한편으로 많은 부작용과 사회적 폐단을 가져 오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 나라의 교육과 문화발전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특히 서적의 보존과 생산에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규모가 큰 서원에서는 어서각(御書閣)을 세워 내사본(內賜本)을 비롯한 수집본의 간직은 물론 장판각(藏板閣)을 세워 책판(冊板)의 보존에도 힘썼다. 서원에서 개판한 서적의 종류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1796년(정조 20) 서유구(徐有榘)가 편찬한 ≪누판고 鏤板考≫가 있어, 한정된 시기의 것이기는 하나, 이것을 통하여 17∼18세기 우리 나라 서원판본의 내용과 특징을 알 수 있다. ≪누판고≫에 수록된 책판의 종류는 모두 610종이며,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에 개판된 것들이다.
특히 서원판의 경우는 이를 개판한 서원들이 대개 임진왜란 후에 설립된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개판처(開板處)별로 보면 교서관(校書館)·사역원(司譯院)·관찰영(觀察營)·부(府)·목(牧)·군(郡)·현(縣) 등 관부와 서원·향교·서당 등의 교육기관, 그 밖에 사찰과 개인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서원판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의 약 30%인 180종으로, 조선시대의 서적출판에서 서원판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이전에 설립된 서원 중 ≪누판고≫에 나타나는 것은 7개에 불과하다.
이들 서원에서 개판한 책판들도 대부분 임진왜란 후의 판들이고, 그 중 한두 가지는 임진왜란 전의 판으로 여겨지나 확실한 간기가 없어 단언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서원판본은 거의가 임진왜란 이 후, 특히 영·정조 연간에 개판된 것이 가장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책판들의 서원별 또는 지역별 개판상황을 보면, 먼저 서책을 개판한 서원은 모두 80개 처이며 전체 서원 수의 약 12%에 해당한다. 이는 조선시대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던 서원의 개판사업이 영세하여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음을 나타낸다.
개판의 수량이 가장 많은 곳은 도산서원(陶山書院)으로 총 17종이고, 다음은 노강(魯岡)·옥산(玉山)·회연(檜淵)·돈암(遯巖) 서원 등의 순으로서 5종부터 7종까지이며, 그 밖에는 모두 4종 이하이다.
그리고 서적을 개판한 서원의 약 반수에 가까운 38개 처가 각각 1종을 개판하고 있는데, 내용은 대개 배향자(配享者)의 유고나 연보이다. 지역별로는 경상도가 전체 180종 중 약 70%에 해당하는 124종으로 가장 많으며, 다음은 충청도 22종, 전라도 20종, 황해도 8종, 경기도 2종의 순이다.
이 판본들을 주제별로 살펴보면 문집류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다음이 전기류(傳記類)·유가류(儒家類)의 순이다. 그리고 당시 이단시되었던 도가류(道家類)·석가류(釋家類) 등의 서적과 천문·농학·의학 등 과학 분야의 서적은 전혀 개판되고 있지 않다.
이처럼 유가의 문집류와 전기류가 많은 것은 서원에 배향된 인물과 관계 있는 서적들만을 개판하였기 때문이다. 서원의 개판 조사는 ≪누판고≫ 편찬 당시에 누락된 것이 있을 것이고, 또 그 뒤 조선 말기까지의 사이에 개판된 것도 있을 것이므로 앞으로 이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