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삼가염송집』은 구암(龜庵)이 수선사 제2세 사주 진각 국사 혜심(慧諶, 1178-1234)이 편찬한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30권 가운데에서 중국 송대의 선승인 설두중현(雪竇重顯, 980∼1052), 천동굉지(天童宏智, 1091∼1157),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 세 사람이 붙인 염(拈)과 송(頌)을 모아 편집한 책이다. 『선문염송집』에 수록된 공안 1,463칙 중 세 사람의 염과 송이 붙어 있는 496칙의 공안을 발췌하고 각 공안별로 세 사람의 염과 송을 제시하였다. 정식 서명은 『선문설두천동원오삼가염송집(禪門雪竇天童圜悟三家拈頌集)』이며, 전체 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문염송집』은 1226년(고종 13)에 처음 간행되었고, 이후 1243년(고종 30)에 혜심을 이어 수선사 사주가 된 청진국사(淸眞國師) 몽여(夢如, ?∼1252)가 347칙의 공안 및 염 · 송 등을 추가하여 재간행하였다. 이 증보된 책을 토대로 구암이 설두중현, 천동굉지, 원오극근 세 사람의 염송을 발췌하여 『선문설두천동원오삼가염송집』을 편찬하였다. 그리고 당시 무인 집정인 최우(崔瑀, ?-1249)에게 부탁하여 1246년(고종 33)에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혜심과 몽여의 가르침을 받았던 천영(天英, 1215-1286)이 지은 후서(後序)에 편찬 및 간행 경위가 서술되어 있다. 간행 시기나 판의 형태로 볼 때 『선문염송집』과 마찬가지로 고려 대장경 보판의 일부로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편집자인 구암에 대해서는 당시 수선사 사주로서 『선문염송집』을 증보하였던 몽여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지만, 몽여가 구암으로 불렸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천영이 후서에서 편찬자를 구암(龜庵) 노선(老禪)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보면 구암은 수선사 승려로서 천영의 선배였던 것으로 보인다.
구암이 『선문염송집』에서 설두중현, 천동굉지(굉지정각), 원오극근 세 사람의 염송만을 뽑아 별도의 책을 만든 것은, 이 세 사람이 송나라 때의 공안선을 대표하는 선승들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설두중현과 천동굉지는 각기 옛 조사들의 대표적인 공안 100칙(則)을 모으고 거기에 자신의 평가를 붙인 『송고백칙(頌古百則)』(『설두송고(雪竇頌古)』와 『굉지송고(宏智頌古)』)을 편찬하였고, 원오극근은 설두의 『송고백칙』을 대상으로 하여 거기에 자신의 평가를 덧붙인 『벽암록(碧巖錄)』을 남겼다. 이 책들은 당대의 가장 대표적인 공안집으로 중국은 물론 고려 불교계에서도 널리 읽혔다.
한편 이 세 사람은 각기 운문종(雲門宗), 조동종(曹洞宗) 그리고 임제종(臨濟宗)에 속하였다. 따라서 이들의 염송은 각 종파의 선풍을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천영이 쓴 권말의 후서에서는 여러 스님들의 염송 중에서도 세 사람의 염송이 가장 뛰어나다고 하면서 “설두는 말이 심오하고 이치의 헤아림이 크며, 천동은 말이 정밀하여 아주 작은 것도 잘 분석해 내며, 원오는 마음의 활용이 드넓고 칭찬과 비판이 여유있다(如雪竇言奥而理量大 天童語精而秋毫分 圜悟機曠而褒貶足)”라고 평가하고 있다.
『선문삼가염송집』에는 『선문염송집』에 수록된 설두중현과 천동굉지의 염송은 모두 수록되어 있지만, 원오극근의 염송 중에서는 일부가 누락되었다. 『선문염송집』에서는 원오극근을 원오근(圜悟勤) · 불과근(佛果勤) · 장산근(蔣山勤) · 숭녕근(崇寧勤)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 중 숭녕근(崇寧勤)의 것으로 제시된 염송들이 빠져 있다. 편찬자 구암이 숭녕근(崇寧勤)을 원오극근과 다른 인물로 생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선문삼가염송집』은 고려 시대 불교계에서 공안선, 특히 설두중현과 천동굉지, 원오극근의 공안 평가에 높은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선문염송집』과 마찬가지로 수선사의 승려가 편찬한 것으로 당시 수선사에서 공안 탐구에 많은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 주는 자료로서도 의미가 있다. 또한 고려 대장경 보판의 일부라는 점에서 서지학적으로도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