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중심(仲深), 호는 영동(永同)·창랑(滄浪). 대사헌 성세순(成世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감 성수침(成守琛)이고, 아버지는 좌참찬 성혼(成渾)이며, 어머니는 고령신씨(高靈申氏)로 첨정(僉正) 신여량(申汝樑)의 딸이다.
1585년(선조 18) 사마시에 합격하여 연은전참봉(延恩殿參奉)·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를 지냈다. 아버지가 무욕(誣辱: 아무 혐의없이 무고로 욕을 당함)을 당하게 되자 벼슬을 버리고 임천(林泉)에서 14년간 은거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뒤 사포서사포(司圃署司圃)를 거쳐, 영동현감(永同縣監)을 역임하였다. 박학한 학자로서 글씨도 잘 썼다. 창녕의 물계서원(勿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태극변(太極辨)』·『홍범의(洪範義)』·『창랑집(滄浪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