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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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학
개념
사람들 사이에 성적 접촉으로 인해 전염되는 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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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사람들 사이에 성적 접촉으로 인해 전염되는 질병.
내용

사교병(社交病)·화류병(花柳病)·문명병(文明病)이라는 이칭도 있다. 제3급 법정전염병이다. 일반적으로 성행위로 전파되는 질병이며, 흔히 VD(Venereal Disease)라고 불리나 좀더 광범위하게는 성병의 의미를 갖는 성인질환(性因疾患, Sexually Transmitted Disease, STD)으로 불리고 있다. 성병에는 임질(淋疾)·매독(梅毒)·연성하감(軟性下疳)·서혜임파육아종증(鼠蹊淋巴肉芽腫症) 등 8∼9종이 있는데, 그 중에서 임질과 매독이 가장 대표적이다.

제2차세계대전 후 페니실린의 출현으로 고개를 수그리는 듯했던 성병은 전문가들이 예고한 대로 세계적으로 다시 증가되기 시작하여, 오늘날 고도의 의학 발달과 정치적·사회적인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계속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1950년대 후반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하여, 성활동이 활발한 20∼24세군에서 특히 많이 발생되고 있다.

특기할 만한 변화는 이전에 대도시·빈민층과 남성에게 많았던 것이 도시·농촌을 막론하고 전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과, 여성군에서의 이환율 증가로 인한 모든 연령과 사회계층에 만연되어 있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성병 예방대책으로는 환자의 조기 발견이 중요하며, 집단 검진과 접촉자의 추적 등이 효과적이지만, 경제적·사회적인 제약 때문에 쉽지 않다.

조기 발견·조기 치료를 위해서는 진단과 치료에 수반되는 경제적·사회적 속박이 제거되어야 한다. 최근 정부에서는 성병환자에 대하여 지정의료기관을 통한 무료 진료의 길을 터놓기는 하였으나, 개인 비밀의 보장과 선택의 기회 등 다각적인 검토가 가해져야 하겠다.

매독스피로헤타의 감염으로 발병하는 만성·전신성 성병으로 두 가지 형으로 구분된다. 그 하나는 성교에 의해 전파되어 전세계에 발생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지방적으로 발생되며 성교와는 관계없이 전파된다. 경제·사회·계절 상태가 발생하기 좋은 지역에 한정되고 있다. 매독은 흔히 볼 수 있는 감염병으로 전세계에 분포되어 있고 특히 15∼30세에 많다.

종족별 차이는 생물학적 인자라기보다는 사회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며, 농촌보다 도시에 많고 여성보다 남성이 많다. 매독의 병원(病源)은 트레포네마 팔리둠(Treponema Pallidum)이다. 사람만이 병원을 가지고 있으며, 감염원은 감염된 자의 피부와 점막의 현성(顯性:증상이 나타남) 혹은 잠복된 습(濕)한 조기병소(早期病巢:병원균이 모여 조직이 헐음)의 배출물이며, 전염기 중의 체액과 분비물·타액·정액·혈액·질분비물(膣分泌物) 등도 감염원이 된다.

그 전파는 1, 2기 매독 환자와의 직접 접촉(성교·키스·소아애무)로 이루어진다. 오염된 물건에 의한 간접 접촉은 비교적 의의가 없고 경태반감염(經胎盤感染:태반을 통한 감염)이 임신 4개월 이후에 일어날 수 있으며, 때로는 수혈로도 전염된다. 전염 기간은 변화가 많고 확실하지 않으나 1기와 2기 매독이 있을 때 또는 간헐적으로 피부나 점막에 재발이 생기는 2∼4년 동안이다.

잠재 기간중(2∼4년)의 성교에 의한 감염은 인정되지 않았으나 불현병소(不顯病巢:병균이 모였으나 나타나 보이지는 않음)의 존재 가능성이 있는 까닭에 이 시기에도 감염의 가능성이 고려된다. 적절히 치료하면 24시간 이내에 전염성이 없어진다. 매독의 병태(病態)는 초발병소(初發病巢), 피부 및 점막의 2차 발진, 긴 잠복기, 피부·뼈·내장·중추신경과 심장혈관계에 나타나는 만기(晩期)의 병소가 임상적 특징이 된다.

서양에서는 매독의 전파에 대하여 신대륙전래설과 본래부터 있었다는 설 두 가지가 있다.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신대륙전래설은 “1492년에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를 발견하자 항해에 참여했던 선원들이 서인도제도의 여인으로부터 매독을 구 세계인 스페인에 옮겼다.”는 것이다.

그 뒤 2년이 지난 1494년 프랑스가 나폴리왕국을 공격할 때 외인부대를 썼는데, 그 중 스페인으로부터 매독 환자가 참전해서 나폴리에 매독이 퍼지고, 따라서 이 병을 ‘나폴리병’이라고 불렀다. 그 뒤 프랑스군대의 본국 귀환과 함께 이 무서운 역질이 프랑스에 들어오고 또다시 ‘프랑스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전세계에 무서운 피해를 끼쳤으며, 유럽에서는 매독에 따른 용모의 훼손을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해 귀족이나 법원의 판사들이 가발을 쓰기 시작하였고, 오늘날 유럽에 보급되어 있는 성기세척장치(性器洗滌裝置)인‘비데’도 등장하였다.

신대륙전래설을 부인하는 또 다른 설은 그것이 본래부터 서양에 있었으나 다른 병과 혼동된 채로 있었다는 것이다. 15세기 말부터 매독은 유럽에 무섭게 퍼져 나가 한창 늘어났던 동방 교역의 증가와 문예부흥의 불길로 인한 개인의 자유 회복과 민족국가의 출현, 그리고 카톨릭 교권의 몰락과 함께 전세계에 급속히 퍼졌다.

우리 나라에서 매독 또는 매독과 비슷한 질병에 관한 고의서(古醫書)로는 이미 사라져 버린 책인 ≪치포방 治疱方≫ 또는 ≪치포이험 治疱易驗≫을 들 수 있고, 다음으로는 ≪의림촬요 醫林撮要≫, ≪동의보감≫과 의서는 아니나 ≪지봉유설 芝峰類說≫ 등을 들 수 있으며, 이 외에도 조선 후기의 ≪의종손익 醫宗損益≫이 있다.

흔히 우리 나라에서 많이 쓰인 매독의 명칭은 천포창(天疱瘡)이나 양매창(楊梅瘡)이었다. 중국에서는 천포창·광동창(廣東瘡)으로 부르기도 하였고, 1520년대 이후에는 양매창이라고 하였다. 일본에서는 당나라에서 전래되었다고 하여 당창(唐瘡) 또는 남쪽에서 들어왔다고 하여 유구창(琉球瘡)이라고 불러 그 전염 경로를 암시하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 매독이 유행한 데 관한 뚜렷한 언급은 1614년(광해군 6) 이수광(李睟光) 이 찬한 ≪지봉유설≫에서 볼 수 있는데, “우리 나라 의서를 훑어보건대, 천포창은 중종 원년으로부터 16년(1506년∼1521년)까지에 이르는 이후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병이다. 중국 또한 과거에는 이 병이 없었으나 서역으로부터 전해져 왔으며, 그 뒤 이 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졌다.”는 기록이다. 즉, 우리 나라에서는 1506년 이전에는 매독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보다 앞서 명종 때 찬술된 ≪치포방≫ 또는 ≪치포이험≫이 매독에 관련된 최초의 의서라고 짐작되지만, 다만 이 책의 존재는 다른 의서를 통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므로 ≪지봉유설≫의 기록이 우리 나라 최초의 매독과 관련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매독의 원인에 대해서 광해군 때 완성된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許浚)은 명나라 이정(李梃)의 ≪의학입문 醫學入門≫을 인용해서 “천포창은 양매창이라고도 하여 나병(癩病)과 비슷하고 흔히 간(肝)과 비신(脾腎)의 풍습(風濕)과 열독(熱毒)에 연유하며 남녀방실(男女房室)의 교접(交接)에 의하여 전염된다.”고 하고 있다.

이 기록에서는 이 병이 남녀간의 교접에 의하여 전염되는 일종의 악창(惡瘡) 내지 악병(惡病)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어서, ≪지봉유설≫과 함께 매독이 외국에서 들어온 수입병(輸入病)이며, 남녀관계를 통해 전염된다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의학입문≫에 수록된 증상은 다음의 내용과 같다.

“형상이 양매(楊梅)와 같고 흔홍(焮紅)하고 습란(濕爛)하며 양통(痒痛)한 증(症)은 심(心)에 속하니 유(乳)·협(脇)에 많이 나고, 형상이 고정(鼓釘)이나 황두(黃豆) 같은 증은 비(脾)에 속하니 만면(滿面)에 많이 나며, 형상이 면화 같은 것은 폐(肺)에 속하는데 모발에 많이 나고, 형상이 보랏빛 포도와 같으면서 누르며, 긴통(緊痛)한 증은 간(肝)·신(腎)에 속하는데 고전(尻臀)과 양음(兩陰)의 근골(筋骨) 사이에 많이 총생(叢生)하며, 형상이 어포(魚疱)와 같고 안에 백수(白水)가 많으며 눌러도 긴(緊)하지 않은 증만 포창(疱瘡)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것은 다 경(輕)한 데 속한 증이다.”

매독이 우리 나라에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양란(兩亂) 때였다. 아마도 이때 일본인들을 통해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왔거나 아니면 다시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전쟁은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파괴하며 성의 문란을 초래하기 쉽다는 것은 이미 동서고금을 통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악병을 치료하는 데는 특효약이 없었다. 민간에서는 이를 치료하기 위해 어린이들의 간담(肝膽)을 약용으로 쓰는 해괴한 풍습이 나돌았다. 이러한 악창 내지 음창(陰瘡) 유행에 따른 미신적 치료법으로서의 살인식담(殺人食膽)과 같은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오래도록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임균에 의하여 생기는 성병으로, 세계적으로 분포된 흔한 질병이며 특히 경제상태가 나쁜 사람 사이에 많다. 남녀가 모두 걸리며 어떠한 연령층에도 이환될 수 있으나 특히 성활동이 강한 연령층에 많다. 사람에 균(네이세리아 고노레아균)이 보존되며 감염원은 감염된 자의 점막삼출액(粘膜渗出液)이다.

전파는 거의 전부가 성교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신생아안감염(新生兒眼感染)은 출생 때 생기며, 그 밖에 직장(直腸)에서 체온을 측정할 때 혹은 소아는 요강으로 감염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특수치료에 의해 전염성은 수시간 내지 수일 내에 없어지나 치료를 하지 않으면 수개월 내지 수년에 이른다.

병태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으나 자가국한성(自家局限性)의 감염이다. 남성에서는 요도(尿道)에 농(膿)이 생기고, 여성에서는 무증상이거나 혹은 경중의 차이는 있으나 난관염(卵管炎)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임질도 매독과 같이 여러 나라에서 16세기 이후 크게 문제되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기원을 신대륙의 발견과 때를 같이해서 보는 사람들은 드물다. 유럽에서는 이미 이와 비슷한 병이 구약성경에 나타나며, 우리 나라에서도 고려시대부터 그 확실한 기록이 보이고 있다.

우리 나라 임질의 첫 기록은 ≪고려사≫ 36권, ≪고려사절요≫ 25권에 전왕인 충혜왕과 그와 관계한 많은 부인들이 임질에 걸린 것으로 되어 있다. 고려 중기에 나온 ≪향약구급방 鄕藥救急方≫에도 임질이라는 말이 나온다. 임질에는 석림(石淋)·고림(膏淋)·기림(氣淋)·노림(勞淋)·혈림(血淋) 등 다섯 가지가 있다.

임(淋)이란 원래 제대로 배설이 안 되고 자주 적게 나온다는 뜻으로, 반드시 오늘날의 성병과 일치한다고는 볼 수 없으나, ≪동의보감≫에는 확실히 성교와 관계 있는 임질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성행위를 함부로 하고, 오래 하며, 사정(射精)하지 않으면, 이것이 원인이 되어 임질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확실히 오늘날의 임질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동의보감≫에는 임질의 증상에 대하여 ≪상한론 傷寒論≫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소변이 좁쌀 같고 소복(小腹)이 당기며 배꼽도 아프고 당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성병의 민간요법은 달팽이를 달여서 마시기, 소주에 송진가루를 넣어 먹기, 아카시아 뿌리를 깨끗이 씻어 두들겨서 생즙을 내어 식전에 먹기, 소뿔을 태워서 재를 가루로 만들어 막걸리에 타서 마시기 등 여러 가지 치료법이 사용되어 왔다.

1945년 11월 미군정령에 의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공창제도(公娼制度)가 폐지되었으나 공창 대신에 사창(私娼)이 증가하게 되었고, 성병 보균율도 상승하였다. 대한민국 수립 후 국립중앙성병원(國立中央性病院)이 발족되어 업태부(業態婦)를 치료하는 데 주력하였으나, 6·25전쟁으로 성병이 확산되어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전국에 111개의 성병진료소가 개설되었다. 그러나 업태부의 비협조와 일반 국민의 무관심으로 이러한 시설은 선용되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사정에서 보균율이 가장 높을 것이라고 믿어지는 업태부에 대해서만이라도 검진을 실시하고 예방책을 세우려는 의도 아래 1954년 2월에 <전염병예방법>이 공포되었고, 성병을 제3급 법정전염병으로 지정하여 강제 건강진단을 실시할 수 있게 하였다.

1969년 11월에 공포된 <전염병예방법시행령>은 성병에 관한 건강진단을 받아야 할 대상자의 범위를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① 접객업소에 종사하는 자, ② 매음행위를 하는 자, ③ 기타 성병에 감염되어 매개 전파할 우려가 있다고 의사가 진단한 자 등이다. 또한, <전염병예방법>에 의하여 성병에 관한 건강진단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하는 <성병검진규정>이 1969년 2월에 보건사회부령으로 공포되었다.

이 영에서는 “외국인이 밀집하여 주둔하거나 윤락행위를 하는 여자들이 밀집한 지역에 있는 댄서·접대부·기타 윤락행위를 하는 특수업태부의 소재를 항시 파악하여 성병의 발생과 만연을 방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특수업태부에 대하여 수시로 성병에 관한 강제 진단 및 치료를 실시할 것도 규정하고 있다. 근래에 와서도 성병은 사회문제로 남아 있으며, 1978년부터 성병환자에 대하여 무료 진료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의학입문(醫學入門)』
『의림촬요(醫林撮要)』
『치포방(治疱方)』
『지봉류설(芝峰類說)』
『동의보감(東醫寶鑑)』
『감염병』(김종휘 외, 해문사, 1963)
『보건사회부통계연보』(보건사회부, 1987)
『朝鮮醫學史及疾病史』(三木榮, 大阪, 1960)
집필자
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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