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이씨 영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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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성주이씨 영정 / 이장경
성주이씨 영정 / 이장경
회화
유물
국가유산
성주 나라에 공을 세운 이씨 집안의 인물 10명을 그린 영정.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성주이씨영정(星州李氏影幀)
분류
유물/일반회화/인물화/초상화
지정기관
경상북도
종목
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유산(1989년 05월 29일 지정)
소재지
경상북도 성주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성주이씨 영정은 나라에 공을 세운 성주 이씨 집안의 인물 10명을 그린 영정이다. 1989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이씨 대종회에서 소장하고 있다. 고려부터 조선 초기까지 나라에 공이 있는 10명의 초상화 13점이다. 원래 22점이 있었는데 일부를 임진왜란 때 도난당하여 13점이 남게 되었다. 이 영정들은 조선 후기에 여러 차례 중모·개모를 거친 것이다. 영정들은 대부분 공신도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장경, 이조년, 이숭인 등의 영정은 고흥 성산사의 것과 같은 상용 형식을 취하고 있다.

목차
정의
성주 나라에 공을 세운 이씨 집안의 인물 10명을 그린 영정.
개설

1989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화리 성주 이씨 대종회에서 소장하고 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초기까지의 성주 이씨 집안의 선조로, 나라에 공이 있는 10명의 초상화 13점을 조선 후기에 다시 그린 것이다. 당초의 제작 연대는 미상이며 전부 개모 또는 중모된 것으로서 대부분 공신도상(功臣圖像)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각기 그 직계 자손들에 의해 보존되어 오던 22점의 영정을 문중에서 모아 1581년(선조 14) 지금의 벽진면 지산리에 영당을 건립하여 한 곳에 봉안하였다. 이 중 일부를 임진왜란 때 도난당하여 13점이 남아 있다. 1714년(숙종 40), 1746년(영조 22), 1825년(순조 25) 등 여러 차례에 걸친 전반적인 중모 · 개모를 거쳐 현재의 장소에 봉안되어 있다.

이 중에서 이장경(李長庚), 이조년(李兆年), 이포(李褒), 이숭인(李崇仁), 이직(李稷), 이사후(李師厚)의 영정은 전라남도 고흥 성산사(星山寺, 1884년 건립)에 봉안된 것과 같은 상용형식(像容形式)을 취하고 있다. 같은 이모본(移摹本)이기는 하나 성산사본이 원본에 더 가까울 것으로 생각된다.

내용

각 영정의 면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이장경 영정: 위가 낮은 평정건(平頂巾)을 쓴 관복상으로서 무릎을 꿇고 탑상(榻床) 위에 앉아 오른쪽을 바라보는 칠분면[左顔七分面]의 전신상이다. 공수(拱手)자세를 취한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부자연스럽게 드러나 있다. 얼굴 부분의 덧칠이 심하며 화면이 많이 박락(剝落)되어 있다. 성산사(星山祠)에 보존된 초상과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② 이조년 영정: 홍포직령(紅袍直領)을 입고 붉은 세조대(細條帶)를 두르고 교의(交椅)에 앉아 있다. 정면상에 가까운 전신상[全身交椅坐像]이다. 오른손은 무릎에 왼손은 의자 팔걸이에 기대고 있으며 양손이 표현되어 있다. 교의(交椅)에 깔린 호피와 바닥의 채전(彩氈: 카펫)은 다시 제작할 때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성산사에 봉안된 초상의 이모본으로 생각된다.

③④ 이승경(李承慶) 영정 2점: 금관조복을 입고 양손을 가슴에 모아 홀을 잡고 있는 전신입상이다. 두 점이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이 중 한 점은 바닥에 화문석이 삽입되어 있고, 옷자락 선을 곡선 처리하는 등 자연스러운 표현이 첨가되었다.

⑤ 이포 영정: 공민왕 때의 인물로서 이조년의 아들이다. 양손으로 염주를 들고 의자에 앉아 있는 우안팔분면(右顔八分面)의 전신상이다. 교의(交椅)의 호피(虎皮)와 바닥의 채전(彩氈)은 후대에 첨가하여 그린 것으로 보인다. 성산사본과 같은 형식을 취한 이모본으로 보인다. 손에 든 염주, 바닥의 화문석, 족좌대의 표현, 관복 띠의 유무 등 몇 가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이원구(李元具) 영정: 좌안팔분면(左顔八分面)의 의자에 앉은 전신상으로서 오른손은 염주를 쥐고 있고, 왼손은 교의(交椅)의 손잡이를 쥐고 있다.

⑦ 이직 영정: 공수자세를 취한 우안팔분면(右顔八分面)의 전신교의좌상으로서 여말선초 공신도상의 양식을 취하고 있다.

⑧⑨ 이제(李濟) 영정 2점: 등받이가 없는 기다란 의자에 앉은 의좌상으로, 2점이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⑩⑪ 이사후 영정 2점: 오사모(烏絲帽)를 쓰고 교의에 앉은 우안구분면(右顔九分面)의 전신상이다. 후대에 다시 그린 중모본에는 모란꽃 문양의 흉배와 바닥의 화문석이 삽입되어 있다.

이욱(李稶) 영정: 오사모(烏絲帽)를 쓰고 교의에 앉은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의 전신상이다. 무릎의 아래에서 잘려진 채 표구되어 있다.

⑬ 이숭인 영정: 양손을 드러내고 있는 전신교의좌상으로서 전체 영정 중 채색이 가장 선명하고 진하다. 상용형식이나 화면 좌우에 자찬기(自讚記: 제가 한 일을 제가 칭찬하여 쓴 기록)와 화기(畵記)가 씌어 있는 점 등 성산사본과 같은 형식이다. 인물은 전체적으로 옆으로 퍼져 넓적하게 표현되었고 바닥의 화문석 문양도 간결화되었다.

참고문헌

『한국의 초상화』(조선미, 열화당, 1983)
「성주이씨 가문의 초상화 연구」(윤진영, 『장서각』22,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집필자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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