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원유(元裕), 호는 수옹(睡翁). 참봉 송세량(宋世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봉사(奉事) 송구수(宋龜壽)이고, 아버지는 의빈부도사(儀賓府都事) 송응기(宋應期)이며,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로 이윤경(李潤慶)의 딸이다. 송시열(宋時烈)의 아버지이며, 최립(崔岦)의 문인이다.
1617년(광해군 9)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으나 같이 합격한 이영구(李榮久) 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궁(西宮)에 유폐되어 있는 인목대비를 혼자 배알하였다가 유적(儒籍)에서 삭제되었다.
그길로 즉시 귀가하여 독서로 소일하면서 학숙(學塾)을 열어 학규를 엄격히 하고 고훈격언(古訓格言)으로 학도를 가르쳤다. 1623년에 인조반정으로 강릉참봉(康陵參奉)에 제수되었고,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 때는 도보로 공주의 행재소까지 왕을 호종하였다.
난이 평정된 뒤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이 되었고 1627년에 사옹원봉사의 제수를 받고 서울로 가는 도중에 청나라의 침입으로 남하하는 세자를 만나 완산(完山)으로 호종하였다. 뒤이어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말을 듣고 비분을 이기지 못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영조 때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경헌(景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