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송림사 대웅전 앞마당에 있다. 탑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기단과 벽돌로 쌓은 탑신, 청동으로 주조된 상륜으로 구성되었다. 1959년 완전 해체 복원되었는데, 수리 당시 1층, 2층, 3층과 상륜의 복발 등에서 다량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사리장엄구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되어 국립대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전탑의 건립과 중수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1959년 해체 수리시에 탑내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를 통하여 여러 차례 수리복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층 탑신 내부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목불과 파손된 석불, 동불 등은 원래 감실을 막아 봉안된 것이다. 또한 2층 옥개석에서는 거북모양[龜形] 석함 속에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특히 이 석함에서 발견된 사리기는 감은사 석탑에서 발견된 보장형(寶帳形) 사리기와 유사하며 사리병을 비롯한 유리잔은 최고의 사리구로 평가된다. 한편 상륜의 복발에는 청자상감합(靑磁象嵌盒)이 봉안되었고, 그 내부에는 향나무(香木)가 들어있었다. 따라서 이 전탑은 통일신라 초기에 건립된 후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여러 차례 수리가 있었으며 그때마다 추가로 사리기가 봉안되면서 탑의 변형이 있었다고 추정된다.
기단은 지대석을 놓고 면석을 세운 후 갑석으로 덮는 가구식으로 되어 있는데 상단부를 흙으로 채웠다. 탑신은 사각형(方形)과 직사각형(長方形)의 벽돌로 쌓아 올렸다. 탑신의 비례는 1층에 비해 2층에서 절반에 가까운 급격한 체감을 보이지만 2층부터 5층까지는 거의 변화없이 완만하다. 탑신에는 별다른 흔적은 없으나 초층탑신 남면은 원래 있던 감실을 채운 흔적이 발견된다. 옥개석은 하단을 내어쌓고 상단을 들여쌓아 전형적인 전탑의 옥개석 양식을 보이고 있다. 각층의 탑신받침은 1층부터 9, 7, 7, 6, 4단으로 줄어들며, 옥개 상단은 1층부터 11, 9, 8, 7, 5단으로 감소하고 있다. 지붕의 추녀는 재질의 특성상 짧고 평박하다. 상륜은 5층 옥개석 위에 벽돌을 3단으로 쌓아 높이고 철판을 놓아 노반을 형성하였는데, 모서리에는 풍경을 달았다. 그 위로는 청동제 복발(覆鉢), 앙화(仰花), 보륜(寶輪), 수연(水煙)의 일부, 용차(龍車), 보주(寶珠)의 순으로 남아 있다.
이 탑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전탑 가운데 원형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다. 기단부는 화강석을 이용하여 지대석, 장대석(長大石), 면석(面石), 갑석(甲石) 등 완벽한 가구식 기단으로 구성되었다. 현재 안동 지역에 남아 있는 전탑들은 기단부가 크게 변형되거나 유실되었는데, 전탑의 경우에도 화강암을 이용한 가구식 기단이 원형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초층 탑신부 하단에는 화강암으로 탑신괴임을 두어 내구성을 높였으며 탑신의 체감률이 적절하여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지녀 5층전탑의 전형을 보여준다. 특히 높이 약 4.5m의 금속제 상륜부는 기록상으로만 남아 있는 안동지역 전탑의 형태를 추정하는데 결정적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탑은 재질의 특성상 파괴되거나 외형이 크게 변형된 것에 비해 이 탑은 거의 완벽한 형태로 전승되어 왔다. 금동 상륜부는 1959년 해체수리시에 원형을 복원한 것이지만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전탑의 상륜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완벽한 형태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는데, 사리구의 구성이나 내용면에서 최고의 예술적 가치를 지녀 당대 공예기술의 백미로 평가된다. 특히 2층 거북모양석함에서 발견된 방형사리기는 경주 감은사지 동탑사리기, 일본 호류지(法隆寺) 금당삼존불 천개(天蓋)와 형태가 유사하며 녹색유리잔은 소쇼인(正倉院)에 남아있는 유리잔과 거의 같아 당시 동아시아 문화교류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