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5년(숙종 21)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김사렴(金士廉)·최유경(崔有慶)·이정간(李貞幹)·박광우(朴光佑)·이지충(李之忠)·조강(趙綱)·이대건(李大建)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옥산면 송천리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11년에 ‘송천(松泉)’이라고 사액되었으며, 그 뒤 이제신(李濟臣)·이인혁(李寅爀)·최석정(崔錫鼎)·남구만(南九萬)·박문수(朴文秀)·이종성(李宗城)·이효석(李孝碩)·김여량(金汝亮)을 추가 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
광복 후 지방 유림이 복원계획을 공의하여 오던 중, 국고 보조를 받아 1975년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5칸의 사우(祠宇), 중앙의 모현문(慕賢門)과 양 옆의 협문으로 된 삼문(三門), 4칸의 모현재(慕賢齋), 5칸의 수호사(守護舍), 정문(旌門) 등이 있다.
사우에는 김사렴을 주벽(主壁)으로 좌우에 최유경·이정간·박광우·이지충·조강·이대건·이제신·이인혁·남구만·최석정·박문수·이종성·이효석·김여량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재실은 제향 때 제관들의 숙소와 강학 장소로 사용하고 있으며, 수호사는 서원을 관리하는 고자(庫子)가 사용하고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3월 20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7변(籩) 7두(豆)이다. 재산으로는 대지 750평, 논 2,000여 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