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는 중생이 소원을 구하면 성취한다는 뜻으로서, 이 다라니의 효험에서 이름지어진 것이다.
갖은 이름(具稱)은 『불설금강정 유가최승비밀성불수구즉득신변가지성취다라니(佛說金剛頂瑜伽最勝秘密成佛수求卽得神變加持成就陀羅尼)』이지만, 보통 『수구즉득다라니(隨求卽得陀羅尼)』 또는 『수구다라니』라 줄여 부른다.
이 다라니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는 오래인 듯하나, 문헌으로 남아 있는 것은 고려말이나 조선초의 간행으로 보이는 범자(梵字)와 한자의 대역인 『오대진언(五大眞言)』에 다른 다라니와 함께 수록된 예가 가장 빠르다. 한글 창제 이후에는 여기에 한글 음역을 덧붙여 1485년(성종 16) 간행된 『오대진언』에 실려 널리 보급되었다. 그런데 근자에 한글 음역만으로 된 『수구다라니』가 학계에 알려졌다.
성암문고(誠庵文庫)에 있는 2책은 『수구다라니』 26장과 『불정존승다라니(佛頂尊勝陀羅尼)』 3장으로 되어 있는데, 『존승다라니』의 장4 이하는 낙장이므로 다른 다라니가 더 있었는지도 모른다.
완전한 상태인 『수구다라니』는 앞의 17장에 다라니 계청(啓請)과 다라니를 싣고, 뒤의 9장에 『수구영험(隨求靈驗)』을 실었다. 『수구영험』은 『영험약초(靈驗略抄)』의 『수구즉득다라니』에 해당되는데, 같이 한문본 『영험약초』의 그 부분을 번역하였으나, 번역과 한글 표기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대체로 『수구영험』이 『영험약초』의 『수구즉득다라니』보다 의역으로 된 것이 있고, 또 같은 원문의 구절이 달리 번역되는 등 거친 번역이다. 이러한 번역으로 미루어서 한글판인 『수구다라니』가 『오대진언』이나 『영험약초』보다 앞선 시기의 간행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다라니의 표기에 쓰인 ‘ · , ○’의 · 가 『용비어천가』 · 『석보상절』 · 『월인천강지곡』과 같이 동그란 점으로 되고, 책의 판각이 정교한 편이므로 15세기 중엽의 간행으로 추정하게 된다.
그런데 『수구다라니』 등과 함께 『오대진언』에 수록된 『사십이수진언(四十二手眞言)』이 한글 음역만으로써 1476년(성종 7) 간행된 단행본이 전한다. 다라니의 한글 음역 방식이 한글판 『수구다라니』와 같고, 다같이 『오대진언』에 수록된 다라니이므로, 이 한글판 『수구다라니』도 1476년의 간행으로 추정된다.
책의 국어자료도 이 연대를 뒷받침하나, 계청이나 다라니의 명칭에 나타나는 한자음의 표기가 당시의 현실음을 반영하는 사실이 문제이다. 당시의 불경언해서는 모두 『동국정운』에 따라 한자음이 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한자마다 한글로 독음을 단 다른 불경언해서와는 달리, 이 책이 한자로 된 계청이나 다라니의 명칭과 그 한글 독음을 짝진 행으로 한 점으로 해명된다.
한글판인 『수구다라니』는 1569년(선조 2) 은진의 쌍계사(雙溪寺)에서 복각되었다. 앞쪽의 『수구다라니』는 원간본과 같이 완전하나, 뒤쪽의 『불정존승다라니』는 『대비심신묘장구다라니(大悲心神妙章句陀羅尼)』로 바뀌었다. 복각할 때에 사용된 책에 『불정존승다라니』가 없고 『대비심신묘장구다라니』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