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조선영화사(朝鮮映畫社)가 제작한 10권 길이의 발성·흑백영화로, 촬영과 편집은 황운조(黃雲祚), 조명은 김성춘(金聖春), 미술은 윤상렬(尹相烈), 녹음은 모리다(森田) 등이 각각 담당하였다.
남승민(南承民)·문예봉(文藝峰)·이금룡(李錦龍)·김신재(金信哉) 등이 출연한 이 영화는 1940년에 제작, 개봉되었던 6편의 한국영화 중 유일하게 계몽적·선전적 내용을 담지 않은 순수 오락영화였다. 통속적 멜로드라마로 분류할 수 있는 이 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년한 처녀인 유씨는 우여곡절 끝에 열세 살밖에 되지 않은 신랑에게 시집을 갔다. 그러나 팔자가 기박했던지 신랑은 3년이 못되어 죽고 그녀는 평생을 처녀과부로 지내는 처지가 된다. 20여 년 후 유씨는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하여 친척집에서 동길이란 아이를 양자로 맞아들인다.
한편, 유씨의 재산을 탐낸 친척들이 같은 마을의 글방선생과 유씨가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헛소문을 퍼뜨려 모함한다. 그 일로 충격을 받은 유씨는 자신의 결백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마을 연못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글방선생은 억울하게 죽어간 유씨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비석을 세우고 영원한 처녀의 순정을 상징하는 글을 지어 바친다.
주인공 유씨의 기구한 일생을 영화의 중심적 이야기로 설정하고 있는 이 작품은 영화의 소재나 그것을 구성, 표현하는 시각이 통속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여 영화사적인 측면에서 별다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다만,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일어났던 경향파(傾向派, KAPF) 영화운동의 중심인물이었던 김유영 감독의 마지막 영화라는 점과, 그가 이 영화를 감독하던 중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남으로써 그의 조감독이었던 민정식(閔廷植)이 완성하였다는 일화적 기록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