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 「심청전」을 영화로 만든 작품. 1925년 윤백남(尹白南)프로덕션에서 제작한 무성영화와 1937년 세신양행(世新洋行)이라는 영화사에서 제작한 발성영화가 있으나 두 편 모두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어머니 없이 아버지 심봉사에 의하여 동냥젖을 얻어 먹으며 자란 심청은 효심이 지극하여,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하여 공양미 300석에 청나라 상인들에게 팔려 인당수의 제물이 된다. 그러나 심청의 효성에 감복한 용왕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게 된 심청은 어느 나라의 왕비가 되고, 마침내 심청을 찾아온 아버지 심봉사는 눈을 뜨게 된다는 것이 두 영화의 공통된 줄거리이다.
1925년에 제작된 「심청전」은 ‘순조선(純朝鮮)의 영화제작’을 표방하고 설립된 윤백남프로덕션에서 만든 제1회작품으로, 흑백으로 된 35㎜ 7권짜리 무성영화였다. 이경손(李慶孫)이 감독과 각본을 맡았으며, 배우로 출연까지 하였다. 무성영화시대의 한국영화계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나운규(羅雲奎)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이기도 하며 최덕선(崔德先)·김우연(金雨燕) 등이 출연하였다.
한국영화의 개척기에 나온 작품이라는 점에서 대단한 열의가 담긴 영화라고 할 수 있으나, 당시 일반에게 널리 알려졌던 고전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영화로 만들었기 때문에 소설의 영화화라는 사실 이외에는 특별히 주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 주지는 못하였다.
제작 당시 이 영화는 우리 나라 영화인들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작품이며,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내용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행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으나, 1925년 3월 28일조선극장(朝鮮劇場)에서 개봉한 결과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똑같은 내용의 1937년작 「심청전」은 35㎜ 12권 길이의 발성·흑백영화이다. 안석영(安夕影)이 감독과 각본을 담당하였고, 이명우(李明雨)가 촬영과 편집을, 이필우(李弼雨)가 녹음을 각각 담당하였다. 석금성(石金星)이 심봉사 역을, 김신재(金信哉)가 심청 역을 연기하였으며, 김소영(金素英)·조석원(曺錫元) 등이 출연하였다.
1937년 11월 9일단성사(團成社)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전작(前作)이 흥행에서 실패하였던 것과는 달리 흥행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는 영화적 구성이나 제작 규모가 비교적 짜임새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초기 한국영화에서 「심청전」을 비롯하여 「장화홍련전」·「숙영낭자전」·「홍길동전」·「춘향전」 등의 고전소설이 자주 영화의 소재로 사용된 것은 무엇보다도 이야기의 내용이 일반에게 널리 알려져 영화의 흥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인식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심청전」이 똑같은 내용으로 영화화된 것도 같은 시각에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내용이 널리 알려진 소재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야기 속의 내용을 그대로 영화의 줄거리로 삼아야 하기 때문에 영화적 독창성이나 창조성을 표현하기 어렵다는 한계에 빠질 수밖에 없다. 두 작품 모두 그와 같은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