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안군 ()

대동여지도 중 황해도 수안 부분
대동여지도 중 황해도 수안 부분
인문지리
지명
황해도 동북부에 위치한 군.
정의
황해도 동북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곡산군, 서쪽은 서흥군과 평안남도 중화군, 남쪽은 신계군, 북쪽은 평안남도 강동군과 성천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6°06′∼126°34′, 북위 38°33′∼38°59′에 위치하며 면적 1,215㎢, 인구 8만 551명(1944년 현재)이다. 9개 면 96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수안면 창후리이다.

자연환경

군의 중앙에 언진산(彦眞山, 1,120m)을 주봉으로 하는 언진산맥이 동서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가덕산(可德山, 806m)·오봉산(五峰山, 642m)·천자산(天子山, 756m)·증봉산(甑峰山, 879m)·감박산(甘朴山, 626m)·대청산(大靑山, 873m)·요동산(遼東山, 547m) 등이 잇달아 있어 군을 남북으로 구분한다. 천곡면에는 총령(葱嶺)이란 고개가 있는데, 수안에서 신계로 가는 요로(要路)이다.

남부는 곡산군·신계군에 연속되는 용암대지이며, 북부는 심한 파랑상(波浪狀) 구릉이 전개되는 준평원을 이룬다. 남부에는 예성강의 상류인 위라천(位羅川)·오동천(梧洞川)·언진천(彦眞川) 등이 400∼500m의 산지 사이를 동남류하면서 유역에 평야를 전개해, 감박산과 피란산을 잇는 구릉의 서부는 황주천 상류유역인 능리분지(陵里盆地)로 되어 있다.

황해도와 평안남도와의 경계를 협곡모양의 남강(南江)이 서쪽으로 흐르고 언진산맥의 북쪽 산지를 도소천(道所川)·율리천(栗里川) 등이 북류해 남강에 유입하며, 그 연변에 율리분지(栗里盆地)를 형성한다.

내륙은 산간지방이므로 내륙성 기후가 뚜렷한 편이며 기온의 연교차가 크다. 연평균기온 9.7℃, 1월 평균기온 -8.1℃, 8월 평균기온 25.2℃, 연강수량 1,122.9㎜이다.

역사

[고 대]

신석기시대 이전의 유물은 발견된 적이 없으나 공포리의 석관묘에서 청동기시대의 간돌검·간돌화살촉 등이 발굴되어, 이곳에서 선사시대에 사람들이 생활했음이 확인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토로서 우리말로는 고소어(古所於)라고 불렀으며, 장새(獐塞)라는 지명으로 기록되었다.

삼국통일 뒤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고, 748년(경덕왕 7)장새현으로 편성되어 서암군(栖巖郡)에 소속되었다. 762년에는 성이 수축되었는데, 이것이 읍의 북쪽 40리 지점에 남아 있는 고성이다. 성현행성(城峴行城)은 826년(헌덕왕 18)에 신라가 발해의 남침을 막기 위해 축조한 300리에 달한다는 패강장성의 일부로 추측된다.

[고 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0세기 후반에 현재의 지명인 수안으로 고쳐진 것으로 짐작된다. 수안현은 1018년(현종 9)곡주의 속현으로 편입되었다가 곧 현령이 부임하였다.

1019년 북방에서 침입해 온 거란족에게 노략당해 국가에서 양식을 배급했고, 1178년(명종 8)에는 조위총(趙位寵)의 반란군에게 함락당하는 비운을 겪었다.

또한 1258년(고종 45) 몽고군의 침입을 맞아 조정에서 야별초를 보내 방어한 일이 있으며, 1270년(원종 11) 원나라가 설치한 동녕부(東寧府)에 예속되었다가 8년 만에 환속되었다.

1310년(충선왕 2) 이곳 출신으로 원나라 황실의 환관이 된 이대순(李大順)의 청으로 수주(遂州)로 승격되어 지군사(知郡事)가 부임했다고 하며, 일설에는 황해도·평안도 지역에 기근이 들자 원나라에 청해 쌀 3만여 석을 얻어 와 주민을 살린 이연송의 공로에 대한 보답이라고도 한다. 1391년(공양왕 3) 과전법 실시로 경기를 확대함에 따라 경기우도로 이속되었다.

[조 선]

1394년(태조 3) 도읍을 한양으로 옮김으로써 경기지역이 개편되어 서해도로 환속되었다. 1417년(태종 17) 다시 수안군으로 고쳐져 지군사가 부임하다가 1450년(세종 32)부터 군수가 부임하기 시작하였다.

이 무렵의 호구는 《세종실록》에 따르면 1,085호에 3,786명이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 왕비가 난이 끝날 때까지 수안에 가궁궐(假宮闕)을 짓고 피난했는데, 그 궁터가 연암면 상대리에 남아 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반란군이 이 군을 범접하지 못한 것은 군사들이 문산진(文山鎭)을 굳게 지켰기 때문으로, 조선 전기에는 방원진(防垣鎭)이라고 부르던 이 진은 이 군과 서흥·신계·토산의 군사가 지키는 요충지였다. 1653년(효종 4) 사비(私婢)가 주인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나 10년간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복구되었다.

1794년(정조 18) 금점(金店)을 설치해 본격적으로 금을 채굴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수안광산으로 알려진 남정금광이다. 미산리의 조박골·삼합리 등지에는 서민용 백자를 굽던 15∼19세기의 도요지가 남아 있다. 1759년(영조 35) 당시 13방 38리로 편성되어 있었고, 호구는 3,519호에 1만 8878명이었다.

[근 대]

남정광산이 1905년 영국인 피어슨에 의해 재개발되어 해마다 약 3t의 금을 생산했고, 이근필(李根弼)이 개발한 홀동광산(笏洞鑛山)도 1년에 금 1.5t 정도를 생산했으나 1910년 이후 모두 일본광업이 소유했으며, 금광의 종업원수는 4만 7000명에 달하였다.

근대인물로는 김옥균(金玉均)과 연결되어 일본을 왕래하며 개화운동을 추진한 개화승 이동인(李東仁)이 있으며, 1929년 조선혁명당을 창당하고 1932년 독립군부대를 편성해 중국과 연합전선을 폈던 최용성(崔容成), 국민부(國民府) 집행위원을 역임하고 1935년 조선혁명군 제3사령부 참모장으로 항일전을 펼친 안광선(安光善) 등의 독립운동가가 배출되었다. 1935년 당시 9개 면 96개 이로 편성되었으며, 1942년에 호구는 1만 4197호, 7만 7768명이었다.

유물·유적

군내에 험하고 높은 산과 서북쪽으로부터 개성과 한양으로 통하는 길목이 많아, 예로부터 국방의 요새를 곳곳에 많이 마련하였다. 수안면에서 북쪽으로 8㎞쯤 가면 대오면에 방원령이 있는데, 이곳에 방원진을 설치하였다. 이곳은 평양과 의정부 사이를 연결하는 요지로서 방어시설이 많이 구축되어 있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10에 따르면, 826년(흥덕왕 1) 가을 우잠태수(牛岑太守) 백영(白永)이 한북산 여러 고을의 백성 1만여 명을 징발해 패강장성(浿江長城) 300리를 쌓았다고 한다. 이 험한 준령에 1,100여 년 전에 축성한 성터가 현재에도 남아 있다.

또한 조선 숙종대에는 이 방원진터에 문산진을 설치하였다. 이 때 양파령에 위라진을, 총령에 총령진을 구축하고 각각 병마만호를 임명해 지키게 하였다. 이것은 당시 청나라와의 국교관계를 고려한 국방정책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1451년(문종 1) 황해도 도찰사 정분(鄭苯)이 도내의 성과 성을 쌓을 수 있는 곳을 조사해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군내에는 크고 작은 석성과 토성 및 성을 새로 쌓을 수 있는 곳이 20여 군데나 있다고 하였다. 연암면 상대리에는 행궁지(行宮地)로 불리는 궁터가 남아 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왜군이 다시 쳐들어오자 조정은 왕비와 빈들을 서북지방으로 피난시켰는데, 피난 일행이 신계지방에 이르렀을 때 왜군이 격퇴되었다. 그 때 왕비·빈 일행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머무른 임시궁이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수안면의 진산인 요동산 정상에는 과거 국방시설의 하나인 봉수대터가 있으며, 천자산에는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이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해 천자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한편, 산세가 수려한 수안면에는 조선시대의 객사·관아·누대 등이 있었다.

읍지에 따르면, 객관인 화표관(華表館)은 1494년(성종 7)에 창건하였다. 그 뒤 1637년 병자호란 당시 소실된 것을 1646년에 재건했고, 1670년(숙종 2)에 개수하였다. 객관 문루는 풍화루(風和樓)라고 하였다. 객관 동쪽에는 공취루(拱翠樓)라는 누대도 있었다.

관아건물은 1646년에 창건했으며, 1712년에 서쪽으로 옮긴 것을 1754년에 군수 이각(李殼)이 객사가 있는 위치로 다시 옮겨 지었다. 사찰로는 수구면 덕암리에 자연암굴을 이용해 석실을 조성한 가토사(加土寺)가 유명하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1663년(현종 4)에 창건한 용계서원이 옛 수안면의 요동산 기슭에 있었다. 이곳에는 이연송(李連松)·강백년(姜栢年) 등을 봉사하였다. 근대교육기관으로는 1894년 갑오개혁 이후 1면 1교 정책에 따라 각 면에 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그 밖에 사립학교로는 수안면 옥현리에 최병표(崔炳豹)가 기독교 계통의 옥현학교(玉峴學校)를 설립하였다. 또 1932년 이문백(李文伯)이 율계면 심적리에 심적학교(深寂學校)를 세웠으며, 대오면 남정리에 남정학교(楠亭學校)가 개교하였다.

194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1개교, 농업보습학교 1개교가 있다. 종교기관은 이웃의 곡산군이 천도교의 황해도 동부지방의 거점으로, 천도교교당 5개가 있으며, 개신교교회는 각 면에 1, 2개씩 있다.

산업·교통

수안분지를 비롯해 율리분지·능리분지 등은 수리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벼농사가 잘되지만, 군의 대부분이 용암대지로 덮인 고원지대로서 밭농사를 주로 한다. 따라서 주요 농산물은 밀·보리·조·메밀·옥수수·콩 등이며, 수안평야와 대성평야가 있어 많은 양의 잡곡이 생산된다.

특용작물로는 대마 등이 재배되며, 축우와 누에치기도 활발하다. 임산물의 부산물로 닥나무·밤·약초·버섯·잣 등이 산출되는데, 특히 ‘평양밤’으로 널리 알려진 밤은 토질이 알맞아 맛이 뛰어나 인기가 높다.

지하자원이 풍부해 수안광산을 중심으로 개발되고 있다. 언진산 북쪽 기슭의 홀동광산과 남쪽 기슭의 남정광산을 합해 수안광산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는 금·은·구리·아연·자철광·비스무트 등 다양한 지하자원이 산출된다. 공업은 제지·사기·도자기·창지 등의 공장이 있다.

상업활동은 5일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시장으로 수안장·도하장(陶河場)·사창장(社倉場)·율리장·평원장(坪院場)·홀동장 등이 있다. 도로는 신계-수안-평양을 잇는 2등도로가 군의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며, 수안-능리-황주간의 도로 및 수안에서 서흥-신계-곡산을 잇는 도로가 있다. 남강은 50t급의 선박이 운항할 수 있다.

수안면 용담리에 용담이 있으며 각회산에 용연이 있다. 양파령 중턱에 있는 광제굴은 상·중·하 3중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아랫굴이 제일 넓고 커서 수백 명이 들어갈 수 있으며, 샘물이 흘러내려 한여름에도 얼음이 남아 있어 피서지로 적합하다.

굴 안에는 2개의 구멍이 있다. 남쪽의 것은 얕고 따스하고 북쪽의 것은 깊고 차다. 가운데 굴이 제일 작고 바위가 험하며, 윗굴은 바위가 험준하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굴이 좁아져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어 굴의 길이도 알 수 없다.

굴의 이름을 ‘광제’라고 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1636년(인조 14) 겨울 병자호란이 일어나 청나라의 대병력이 평양을 거쳐 수안까지 닥쳐 왔다. 이 때 이학귀(李學貴)라는 장사가 많은 피난민들을 이끌고 굴 안으로 들어가 입구를 지켜, 광포한 청나라 군사도 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철수하였다.

그 뒤 주민들은 이학귀의 이름을 따서 이 굴을 ‘이학귀굴’이라고 불렀으나 공로자의 이름을 그대로 굴 이름으로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해 군수 강준흠(姜俊欽)이 ‘광제굴’로 고쳐 지었다.

공포면과 평안남도 강동군 삼등면이 접경하는 남강 연안의 절경을 삼십육동천(三十六洞天)이라 하는데, 삼등현령이었던 엄시(嚴蓍)가 강 구비마다의 기경(奇景)이 36개의 별유천지(別有天地)를 형성했다고 해 이름 붙였다 한다.

남강은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발원한 물과 곡산군의 말흘천(末訖川), 수안군의 율리천을 합류시키면서 강동군과 중화군 사이를 흘러 대동강으로 흘러드는 동안 강 연안 산기슭에 절벽과 기암괴석으로 곳곳에 절경을 이룬다.

그 중에서도 공포면 비월리에서 송전리까지 8㎞ 정도에 걸쳐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산협이 들고 나는 곳마다 동굴을 만들고 흰 거품을 일으켜 오묘한 경관을 이룬다. 또한 강에는 황쏘가리·누치·잉어 등의 어족이 풍부하다.

읍·면

[공포면 公浦面]

군의 서북단에 위치한 면. 인구 7,784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마산리이다. 중앙부를 율리천이 북쪽으로 흐르고, 율리천을 경계로 동부 산지와 서부 산지로 나누어진다.

동부 산지에는 아달산(阿達山, 542m)·부등산(浮燈山, 296m) 등이 솟아 있고, 서부 산지에는 강진산(江津山, 516m)·고정산(高亭山, 507m) 등이 솟아 있다.

서부 산지의 서쪽 끝에는 다목천(多木川)이 흐르는데, 율리천 유역과 함께 하천유역에 소규모의 평지와 분지·계곡 등이 형성되어 경작지나 주거지로 이용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해 콩·조·밀·대마 등이다.

도로는 마산리를 기점으로 율리천을 따라 도로가 나 있으나, 각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가 있을 뿐이어서 교통이 불편하다. 명승지로는 남강 중류연안의 방화리에 삼십육동천이 있고, 비월·송전 사이의 8㎞에 걸쳐서는 기암절벽이 36경을 이룬다. 마산리와 기내리 일대에 수안이씨(遂安李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마산(馬山)·대달(大達)·방화(芳花)·비정(飛井)·영천(永川)·하회(下回)·기내(岐內)·육잠(六岑)·반천(飯泉)·송전(松田)·송산(松山) 등 11개 이가 있다.

[대성면 大城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인구 8,705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도하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성동면(城東面)의 도하리 등 9개 이 지역이었으나, 그 뒤 대평면(大坪面) 철령·대촌·미산의 3개 이를 합해 대성면으로 편성되고 수안군에 속하였다.

서북단에 감박산, 남단에 오봉산·득룡산이 솟아 있고, 그 여맥이 면내로 뻗어 내려 검산(劍山)·덕산(德山) 같은 구릉을 기복시켜 전체적으로 평지보다 산지가 많다. 다만 북부 산지 사이를 위라천이 흐르고, 남부 산지 사이를 대평천(大坪川)이 흘러, 유역에 작지만 평지가 형성되어 경작지와 거주지로 이용된다.

주로 밭농사를 하며, 주요 농산물은 조·팥·밀·메밀 등이다. 미산리 조박골에 사기공장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도하(陶河)·좌도(佐桃)·건상(件上)·재동(齋洞)·내덕(內德)·월연(月淵)·광수(廣水)·덕문(德文)·위라(位羅)·철령(鐵嶺)·대촌(大村)·미산(眉山) 등 12개 이가 있다.

[대오면 大梧面]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인구 1만 5615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남정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남정리 등 11개 이를 관할하는 대천면(大千面)이었으나 그 뒤 상대·하대·양곡의 3개 이를 연암면에 이관시키고, 오동면(梧桐面) 상조양·하조양·옥원의 3개 이를 편입시켜 대오면으로 개칭하였다.

동쪽에 거지산이 있고, 서부 평안남도와의 경계에 증봉산 등의 높은 산이 솟아, 그 여맥이 면 전체에 뻗어 내려 면내는 대체로 산지가 많다.

산세가 북쪽으로 경사되어 율리천과 그 지류들은 모두 서북쪽으로 흐르며 이들 하천유역에 규모는 작으나 평지가 발달되어 경작지와 주거지로 이용된다.

밭농사를 주로 하며, 주요 농산물은 콩·밀·메밀·닥나무[楮]·팥·조 등이다. 특히 닥나무를 이용해 한지(韓紙)를 제조한다. 남정리에 수안광산이 있어 금을 산출하며, 제련소도 있다. 사창리는 교통의 요지로 정기시장이 열린다. 도로는 평양과 경기도 의정부간의 2등도로가 율리천을 따라 서부를 남북으로 통과하고, 등외도로가 각 주요 마을에 연결되어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 사립학교 1개교가 있다. 남정(楠亭)·사창(社倉)·동산(銅山)·낙현(樂峴)·원신(遠新)·경도(敬道)·시리원(柴里院)·수치(秀峙)·하조양(下朝陽)·상조양(上朝陽)·옥원(玉原) 등 11개 이가 있다.

[도소면 道所面]

군의 중앙부 북단에 위치한 면. 인구 5,687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옥검리이다. 동부에 가덕산이 있고, 북부에 관봉과 아달산이 솟아 있어, 그 여맥이 서남방향으로 뻗어 내려 산지를 이룬다.

산지 사이의 물이 모여 도소천(道所川)이 되어 서북쪽으로 흐르며, 유역에 규모는 작으나 평지가 형성되어 경작지와 주거지로 이용된다. 동북단에는 남강이 흘러 평안남도와의 경계가 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해 콩·조·밀·메밀 등이다. 동남부의 천치광산(天峙鑛山)은 한때 가동이 활발했으나 지금은 폐광되었다. 면 전역이 산지·임야로 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대두리는 낙엽송, 송촌리는 잣나무의 아름다운 숲으로 유명하다. 옥검리를 기점으로 각 주요 마을에 이르는 등외도로가 개통되었을 뿐 교통이 불편하다.

용천리에 해평길씨(海平吉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옥검(玉儉)·금화(金花)·생검(生儉)·대두(大斗)·송촌(松村)·용두(龍頭)·용천(龍川)·흥덕(興德) 등 8개 이가 있다.

[수구면 水口面]

군의 동북단에 위치한 면. 인구 7,646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석달리이다. 동부에 동산, 서부에 가덕산, 남부에 언진산, 중앙에 청마산 등이 솟아 면 전역이 거의 산지로 되어 있다.

북단에 남강의 두 지류가 흐르는데, 하나는 동부를 북쪽으로 흐르고, 다른 하나는 서부를 동쪽으로 흐르며, 유역에 규모는 작으나 평지가 형성되어 경작지와 주거지로 이용된다. 논농사보다 밭농사를 주로 하며, 주요 농산물은 조·메밀·콩·쌀 등이다.

남부에 홀동광산이 있어 금·은·동을 채굴한다. 도로는 남강과 그 지류를 따라 등외도로가 개설되어 있을 뿐이어서 교통이 불편하다. 남부 언진산에는 옛날부터 불각사(佛覺寺) 등의 큰 사찰이 많았으나 지금은 그 유적만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석달(石達)·보광(寶光)·사치(沙峙)·석현(石峴)·신현(新峴)·덕암(德巖)·임강(臨江)·대강(大江)·군치(軍峙)·유현(楡峴) 등 10개 이가 있다.

[수안면 遂安面]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인구 1만 2376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창후리이다. 본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읍내면(邑內面)의 석교리 등 10개 이로 되었으나, 그 뒤 대평면(大坪面) 하유·상유·외암의 3개 이와 오동면(梧桐面) 갈치리 등을 합해 수안면으로 개칭하였다.

동북부에 요동산, 서부에 피란산, 북부에 천자산 등이 있어 북부지방은 대체로 산지로 되어 있으나, 중부 이남지방은 200m 내외의 구릉이 기복되어 있을 뿐이다. 예성강 지류인 위라천은 서북부에서 동남쪽으로 흘러 남부의 구릉 사이를 곡류하는데, 유역에 규모는 작으나 평지가 형성되어 경작지로 이용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밀·팥 등이다. 산간지대에서는 부업으로 축우·양잠·약초재배 등을 한다. 옥현리에는 토기공장이 있어 옹기·독·시루 등을 제작해 인근지방에 반출한다.

도로는 신계∼평양간의 2등도로가 면의 동부를 종단하고, 수안에서 능리 또는 신막으로 통하는 3등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그 밖에 각 주요 마을에 이르는 등외도로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수촌리에 효험이 있다는 약수가 있고, 용정리에는 ‘굴물’이 흐른다. 천자산에는 고구려태조동명왕의 선조의 묘라는 고분 1기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 농업보습학교 1개교, 사립학교 1개교가 있다. 창후(倉後)·석교(石橋)·용담(龍潭)·수촌(秀村)·자의(慈儀)·옥현(玉峴)·용정(龍亭)·수류(水柳)·괴엽(槐葉)·소촌(蘇村)·갈치(葛峙)·하유(下有)·하오(下烏)·외암(外巖) 등 14개 이가 있다.

[연암면 延巖面]

군의 서북부에 위치한 면. 인구 6,138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율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율리 등 6개 이였으나 그 뒤 대천면(大千面)의 상대·하대·양곡 등 3개 이를 편입하였다.

남단에 대청산이 솟아 있다. 동부는 율리천이 북쪽으로 흘러 다시 도소천과 합쳐지며, 이들 하천유역에 비교적 넓은 평지가 형성되어 경작지로 이용되지만, 서부에는 대체로 산지가 많다. 쌀을 비롯해 콩·조·밀·메밀 등이 주요 경작물이다.

수안∼평양간의 2등도로가 동부의 율리천을 따라 통과하고, 이 도로에서 각 주요 마을로 통하는 등외도로가 나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그러나 서부 산지는 교통이 매우 불편하다.

유적으로는 상대리대청산 아래에 행궁지가 있으며, 율리에 일제강점기인 1930년 교육칙어방화사건(敎育勅語放火事件)이 일어났던 연암보통학교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율(栗)·상암(祥巖)·보전(寶田)·봉곡(鳳谷)·소채(所彩)·연금(延金)·양곡(暘谷)·하대(下大)·상대(上大) 등 9개 이가 있다.

[율계면 栗界面]

군의 서남단에 위치한 면. 인구 6,684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지석리이다. 동부에 피란산, 서부에 국사봉, 남단에 감박산, 북단에 증봉산 등 사방에 산이 솟아 있고, 그 여맥이 면내로 뻗어 내려 전역이 산악으로 중첩되었다.

사방의 산지에서 발원한 능리천 등 여러 작은 시내들은 지석리에서 합류해 서쪽으로 곡류한다. 이들 하천유역에 작은 규모의 평지가 형성되어 경작지와 주거지로 이용된다.

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활발하므로 주요 농산물은 보리·조·감자·메밀 등이다. 도로는 수안∼황주간의 3등도로가 면의 남단을 횡단하며 서흥군 도면 능리에서 각 주요 마을로 등외도로가 통해 교통이 편리하다.

금천리에 교동뇌씨(喬洞雷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 사립학교 1개교가 있다. 지석(芝石)·회석(檜石)·당치(堂峙)·시래(時來)·웅동(雄洞)·수동(守洞)·심적(深寂)·신평(薪坪)·금촌(金村) 등 9개 이가 있다.

[천곡면 泉谷面]

군의 동단에 위치한 면. 인구 9,916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평원리이다. 서북단에 언진산, 중앙부에 단목산이 솟아 있고 그 여맥이 면내로 뻗어 내려 북부는 대체로 산악지대를 이루지만, 남부일대는 200m 이내의 구릉이 이어지는 평지이다. 남부에 예성강과 그 지류인 언진천이 흐르고, 중부 계곡을 평원천(坪院川)이 흐른다. 이들 하천유역에 비교적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경작지로 이용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해 밀·콩·팥·조·메밀 등의 주곡작물이다. 특산물로는 면 전역에서 평양밤이라는 밤이 수확되어 평양을 비롯한 각지에 판매된다. 평원리작수동광산(作水洞鑛山)에서는 금·은 등이 채굴되고, 내금리에서는 금, 달촌리에서는 사금이 산출된다.

도로는 수안∼곡산간의 3등도로가 면을 동서로 횡단하며, 달촌리를 중심으로 각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가 개설되어 있으나 교통이 불편하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2개교가 있다. 평원(坪院)·성교(星橋)·내금(內金)·유촌(柳村)·옥련(玉蓮)·대정(大靜)·용현(龍峴)·총막(葱幕)·달촌(達村)·도전(島田)·주암(舟巖)·상구(上九) 등 12개 이가 있다.

광복 후 변천

황해북도 북부에 있는 군. 동쪽은 곡산군, 서쪽은 연탄군, 남쪽은 신계군·서흥군, 북쪽은 연산군·신평군에 접해 있다. 동경 126。13'∼126。35', 북위 38。33'∼38。50'에 있으며, 면적 639.0㎢, 인구 13만 3600여 명(1996년 추정)이다.

1952년 행정구역 개편시 수안면·대성면·율계면·대오면의 대부분 지역과 서흥군 구포면(九圃面), 곡산군 서촌면(西村面) 일부지역으로 수안군이 개편되었다. 나머지 북쪽지역에는 연산군(延山郡)이 신설되었다. 1954년 황해남도와 황해북도로 나눌 때 황해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행정구역은 수안읍과 남정(楠亭)노동자구, 석담(石潭)·서평(西坪)·신대(新垈)·좌위(佐位)·상덕(尙德)·수덕(水德)·철산(鐵山)·석교(石橋)·산북(山北)·천암(天岩)·용포(龍浦)·주경(周景)·용현(龍峴)·평원(坪院)·도전(島田)·옥치(玉峙)·성교(星橋) 등 17개 이로 되어 있다. 군 소재지는 수안읍이다.

[자연환경]

군의 북쪽은 언진산맥이 서쪽으로 뻗어 내리며, 주봉인 언진산(1,120m)을 비롯해 대각산(大角山, 1,277m)·두무산(杜霧山, 642m)·거지산(擧肢山, 812m)·천자산(756m)·증봉산(879m) 등의 높은 산이 솟아 있다.

서쪽에는 피난산(避難山, 573m)·감박산(626m)·금초산(金草山, 530m) 등이 있고, 남쪽에는 오봉산(642m)·조암산(鳥岩山, 561m)·감적산(甘積山, 388m) 등의 산이 있고, 이 사이를 언진강·오동천·위라천 등 예성강 상류의 여러 강이 비교적 넓은 곡저평야를 평성하고 있다.

주요 기반암은 흑운모·화강암·석회암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동부에 용암이 분출한 지역이 있다. 군에는 금·은·구리·몰리브덴 등의 광물이 많으며, 각지에서 사금이 많이 산출된다.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며, 연평균기온 8.7℃, 1월 평균기온 -8.7℃, 8월 평균기온 23.7℃이다. 연평균강수량은 1,195㎜이며, 무상기일(無霜期日)은 180일에 못 미친다.

[산업·교통]

산지가 넓은 지역이라 경지면적은 군면적의 22.7%에 불과하며, 밭이 76.7%나 차지하고 논은 11.4%에 불과하다. 옥수수·보리·밀·콩 등이 주산물이며, 뽕밭이 3.3%의 면적을 차지해 양잠이 활발한 지역이다.

군에서 지도하는 협동농장이 각처에 설치되어 양잠을 장려한다. 남정노동자구에 있는 수안광산은 1905년 영국의 피어스가 근대식 광산으로 개발해 영국·미국이 공동 경영한, 금·은·구리를 산출하던 광산이었는데, 1994년 현재도 채광을 하고 있으며 몰리브덴의 산지로 유명하다.

언진산맥의 남사면인 성교리(星橋里:광복 당시 내금리·주암리)는 사금 산지로 유명하다. 이 일대는 밤의 주산지로, 평양밤으로 거래되고 있다. 군의 북부를 평양·원산고속도로가 횡단하고, 평양과 신계를 연락하는 도로가 교통의 간선을 이룬다.

수촌리약수는 군 소재지 가까이에 있는 약수이며, 위장병·폐병에 잘 듣는다고 한다. 천자산에는 고구려동명성왕의 조상묘라고 전하는 고분이 있다. 수안의 진산인 요동산에는 용계서원, 언진산에는 불각사(佛覺寺)·은적사(隱寂寺)·수정사(水淨寺) 등이 있었으나 모두 없어졌다. 수안향교는 조선시대에 건립했는데 6·25전쟁 때 파괴되었다.

북동쪽 끝에 있는 대각산은 동물보호구로 지정되어 자작나무·사스레나무·떨기나무 등의 희귀한 나무 외에 남한에서는 이미 멸종되고 없는 사향노루를 비롯해 산양·메추리·비둘기·접동새·수리부엉이·푸른딱다구리 등이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황해도지』(황해도지편찬위원회, 1981)
『북한문화재실태와 현황』(문화공보부문화재관리국, 1985)
『인물의 고향』-북한편(중앙일보사, 1991)
『북한지지요람』(통일원, 1993)
집필자
이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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