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98.0㎝, 가로 38.5㎝. 호암미술관 소장.
전통적인 수월관음도의 구성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변용이 보이는 수월관음도이다.
관음보살은 『화엄경입법계품(華嚴經入法界品)』에서 설한대로 바다에 면한 엄곡(嚴谷)의 바위 위에서 커다란 원광(圓光)을 등지고 앉아 있다. 그런데 고려 관음도에서와는 달리 정면관(正面觀: 앞에서 바라본 모습)을 취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수월관음도의 자세는 경상남도 고성 운흥사(雲興寺) 관음도(1730년 작)나 전라남도 여수 흥국사(興國寺) 관음도(1723년 작)와 같은 후기의 예는 물론, 일본 사이후쿠지[西福寺] 수월관음도와 같이 초기부터 정면관으로 표현되는 예가 많다.
또한 반가좌가 아닌 결가부좌로 앉아 두 손으로 선정인(禪定印: 두 손을 가지런히 배 앞에 모은 손 모양)을 결하고 있는 점도 고려 관음도와는 크게 변화된 모습이다.
관음의 보관에서 무릎 좌우의 베일 끝단이 이루는 이등변 삼각형의 안정감 있는 구도에 결가부좌의 정면관 그리고 다소 근엄한 얼굴 표정 등 전체적으로 자애로움보다는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화면 왼쪽(向右) 아래에는 관음을 우러르며 합장한 선재동자(善財童子 : 求道의 보살 이름), 그 맞은편에는 한 마리의 용이 역시 관음을 향해 얼굴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관음 주위의 배경 묘사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생략되어 있다. 우선 대나무·파랑새 등이 보이지 않고 관음 오른쪽에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靜甁)만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엄곡(嚴谷)의 표현도 울퉁불퉁하지 않고 밋밋하게 표현되어 있다. 물가의 산호와 기화요초 등의 요소도 그려지지 않았다.
신체를 묘사한 윤곽선도 먹선 위에 주선(朱線)을 가한 기법과는 달리 단순히 먹선만으로 그려졌다. 의복에는 굵은 묘선으로 주름을 표현하였는데 다소 경직된 감이 있으며, 문양이 전혀 가해지지 않은 소박한 모습이다.
보관의 모습, 영락(瓔珞: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 장식 등도 매우 단순 소박한 모양이다. 베일도 보관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어깨를 두른 쇼올(shawl)의 형태이다. 하지만 팔이 드러나도록 투명하게 표현하였다.
결가부좌한 단정하고 엄숙한 관음의 자세, 배경을 이루는 여러 요소와 문양이 없는 간략화된 복식, 채색이 많지 않은 수묵 위주의 필법, 어둡게 가라앉은 배색 그리고 화면 윗부분에 쓰여진 찬문(贊文) 등 선종화(禪宗畫)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관음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