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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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백제 무령왕의 태자로 왜(倭)에 질자(質子)로 보내져 체류 중 사망한 인물.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513(백제 무령왕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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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순타(淳陀)는 백제 무령왕의 태자로, 왜(倭)에 질자(質子)로 보내져 체류 중 사망한 인물이다. 순타에 대한 내용은 『삼국사기』 등에는 보이지 않고, 『일본서기』 게이타이 천황 7년(513) 8월조에 “백제 태자 순타가 죽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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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백제 무령왕의 태자로 왜(倭)에 질자(質子)로 보내져 체류 중 사망한 인물.
가계 및 인적 사항

백제 무령왕의 태자이다. 순타(淳陀)에 대한 내용은 『 삼국사기』 등에는 보이지 않는다.

『일본서기(日本書紀)』 게이타이〔繼體〕 천황 7년(513) 8월조에 “백제 태자 순타가 죽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속일본기(續日本紀)』 연력(延曆) 8년(789) 12월조에 “간무(桓武) 천황의 모후(母后)인 다카노노니가사〔高野新笠〕의 선조는 백제 무령왕의 아들 순타 태자에서 나왔다. 백제의 원조(元祖)인 도모왕(都慕王)은 하백(河伯)의 딸이 태양에 정성껏 빌어 낳았다. 황태후는 그 후손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속일본기』 기사는 다카노노니가사가 무령왕의 후손이며, 나아가서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의 혈통을 잇고 있다는 것이다. 다카노노니가사는 원래 와노오토트구〔和史乙繼〕의 딸인데, 야마토노후비토〔和史〕는 문필을 담당하는 집안이다. 이러한 기록으로 볼 때 순타는 무령왕의 아들임을 알 수 있으나, 어떤 인물인지 전혀 알 수 없다.

무령왕 5년(505)에 왜에 파견된 사아군(斯我君)을 순타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일본서기』에 관련된 기사가 있으나, 이 자료에는 사아군이 왜에 파견된 기록만 있고 백제로 귀국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게이타이 7년의 기사는 사아군=순타의 죽음을 기록하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사아군과 순타가 같은 인물임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는 아무것도 없다. 더구나 사아군의 ‘군(君)’과 순타 태자의 ‘태자(太子)’라는 칭호도 다르다, 따라서 양자를 동일인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무령왕의 아들로 되어 있는 순타 태자의 후손들이 왜(倭)에 존재하였고, 간무 천황의 어머니인 다카노노니카사가 고닌〔光仁〕 천황의 부인이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아신왕 6년(397)에 아신왕이 왜국과 우호를 맺고 태자 전지(腆支)를 볼모로 보낸 것에 비추어 볼 때, 무령왕에 의해서 왜에 질자(質子)로 보내져 체류 중 사망하였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백제가 국가적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또는 왜로부터 군사적 도움이 필요하게 될 때, 왕족과 같은 비중이 있는 인물을 인질 외교 형식을 빌려 왜에 파견한 사례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현구·박현숙·우재병·이재석, 『일본서기 한국관계기사 연구』 Ⅱ(일지사, 2003)

논문

연민수, 「왜로 이주한 백제인과 그 활동」(『백제 유민들의 활동-백제문화사대계 연구총서 7』,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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