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고도는 백제 근구수왕(近仇首王)의 왕구(王舅)였다. 구(舅)는 외삼촌의 의미도 있고, 장인(丈人)의 의미도 있다. 그런데 내신좌평(內臣佐平)은 왕의 동생이나 왕의 장인이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로 미루어 진고도는 왕의 장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진고는 근구수왕 2년(376)에 내신좌평에 임명되면서, 왕으로부터 정사(政事)를 위임받았다. 이것은 당시 진씨(眞氏)가 왕실과 통혼으로 백제 지배세력 내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진씨 가문은 비류왕(比流王) 24년(327)에 일어난 내신좌평 왕서제(王庶弟) 우복(優福)의 반란을 진압하고, 비류왕 30년(333)에 진의(眞義)가 내신좌평에 임명됨으로써 유력한 중앙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게 된다.
진씨 가문은 근초고왕(近肖古王) 2년에 진정(眞淨)이 왕후(王后)의 친척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시기 정치세력 재편성의 핵심부에 위치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진씨(眞氏) 가문은 근초고왕(近肖古王) 대부터 아신왕(阿莘王) 대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쳐 왕실과의 통혼을 통하여 성세를 나타내고 있다. 진씨(眞氏) 가문이 왕실과 통혼을 하게 된 구체적 배경은 알 수 없으나, 왕권 하에서 군사적 업무를 장악한 것이 그 배경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근초고왕 대에는 군사권의 확립, 공복(公服) 제정, 율령(律令)의 반포 등 제도적 정비를 통해 왕을 정점으로 하는 일원적인 정치체제로 나가고 있었다. 이 중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 군사권 확립이었다. 왜냐하면, 각 부(部)의 군사력은 왕을 정점으로 하는 일원적인 지배체제로 나가는 데 있어 장애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초고왕은 고이왕(古爾王) 이후 좌장(左將)을 매개로 세력을 확대해 온 진씨 가문과 연결 속에서 각 부의 군사력을 제압하고 군사권을 확립하였을 것이다. 이는 진사왕(辰斯王)⋅ 아신왕(阿莘王) 때 대고구려전에서 진씨 가문이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통해서도 증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