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부인(阿尒夫人)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침류왕 즉위년 조에 “침류왕(枕流王)은 근구수왕(近仇首王)의 맏아들로 어머니가 아이부인(阿尒夫人)이다”라는 기사에서 등장한다. 그런데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대부분 기사는 '○○왕'의 아들 혹은 둘째 아들, 셋째 아들 등으로 왕의 계통이 표기되어 있다. 부계(父系)만 보일 뿐 왕의 어머니가 표기된 것은 아이부인이 유일한 경우이다. 이는 아이부인이 왕비가 아니기 때문에 기록하였을 가능성 또는 기록해야만 하는 특수한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근구수왕이 장인(혹은 외삼촌) 진고도(眞高道)를 내신좌평(內臣佐平)으로 삼았다는 기록에 주목하면 아이부인은 진씨(眞氏) 세력으로 보는 것이 온당하다고 여겨진다. 이처럼 왕비일 개연성이 크다면 특수한 상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에 ‘아이(阿尒)’라는 이름을 ‘아니(阿尼)’와 유사한 이름으로 보아 범어(梵語)의 차용으로 연결시키고, 아이부인을 침류왕 때 불교의 전래와 관련시키기도 한다. 나아가 근구수왕의 죽음을 불교 신앙을 둘러싼 갈등까지 연결시킨다. 하지만 ‘아이’를 불교식 이름으로 확정짓는 것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불교에서 여성 승려를 말하는 아니(阿尼)의 '니(尼)'와 아이(阿尒)의 '이(尒)'는 글자 모양도 다르고 뜻도 다르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침류왕 어머니의 이름이었다는 점이다.
'아이부인'이라는 기록을 통해 4세기 후반인 침류왕 때까지도 여성의 이름이 기술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책계왕(責稽王)이 대방왕(帶方王)의 딸인 보과(寶菓)로 부인으로 맞아들인 사례, 후대까지 인명이 기록된 것을 고려하면 백제에서도 여성의 인명(人名)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