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약청 ()

목차
의약학
제도
조선시대 궁중의 의약 관계를 관장하였던 임시관서.
목차
정의
조선시대 궁중의 의약 관계를 관장하였던 임시관서.
내용

궁중에는 왕실의 병을 치료하고 의약의 제조를 관장하는 내의원(內醫院)이 있으나, 만일 그 병이 중태일 경우에는 임시로 시약청이나 의약청(議藥廳)을 특설하여 내의원 소속 이외의 의관이나 침의(針醫)·의방(醫方)에 능통한 신하들을 참여시켜 치료·투약에 대한 상의를 하여 만전을 기하게 하였다.

정확한 설치연대는 밝히기 어려우나 1565년(명종 20) 9월 왕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가 한 달 뒤에 파하였다는 기록이 보이고, 1618년(광해군 10) 2월 왕비의 병후(病候)로, 1674년(현종 15) 2월 왕의 중환으로, 1821년(순조 21) 3월 왕대비의 병으로, 1834년 순조의 위독으로 시약청이 설치된 기록 등이 실록에 보인다.

비록 임시치료기관이지만, 왕이나 왕비 및 왕대비의 치료를 맡은 중요한 임무를 띤 관청이므로 그 조직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여 도제조(都提調)·제조·부제조·장무관(掌務官)·침의·제약관(劑藥官)·의녀(醫女)·서원(書員) 등의 수많은 관원이 배치되었다.

참고문헌

『명종실록(明宗實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현종실록(顯宗實錄)』
『순조실록(純祖實錄)』
『조선의학사(朝鮮醫學史)』(김두종, 탐구당, 1979)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