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중기에, 성균관전적, 예조좌랑, 전라도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사곡(沙谷), 만오(晩悟)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69년(선조 2)
사망 연도
1614년(광해군 6)
본관
청주(淸州)
주요 관직
예조좌랑|전라도도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중기에, 성균관전적, 예조좌랑, 전라도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사곡(沙谷) 또는 만오(晩悟). 개국공신 정총(鄭摠)의 7세손이며, 사헌부감찰 정응상(鄭應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이조판서 정사중(鄭思中)이고, 아버지는 정구(鄭逑)이며, 어머니는 훈련원봉사 이수(李樹)의 딸이다. 정곤수(鄭崑壽)의 조카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중부 곤수가 종계변무(宗系辨誣)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공으로 선조로부터 자제 중에서 관직에 제수할 사람을 추천하도록 특명을 받자, 자신의 아들을 제쳐두고 장을 추천하여 빙고별제(氷庫別提)가 되었다.

이어 사섬시직장(司贍寺直長)·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감찰·연기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612년(광해군 4)에 신녕현감으로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1614년에는 성균관전적이 되었다가 충청도도사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기도 전에 다시 예조좌랑에 임명되었다.

이어 전라도도사 겸 춘추관기주관이 되었으나 임기도 못 채우고 병을 이유로 사직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죽었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국조방목(國朝榜目)』
『한강집(寒岡集)』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