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된 수량은 2축이나 여기에 부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불보살도 2조각이 포함되어 있다. 이 중 1축의 두루마리는 뭉친 채 풀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 일본 표구 기술자에 의해 풀어본 결과, 당(唐)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신역화엄경(新譯華嚴經)』 80권 중에 권1∼10까지의 내용임이 확인되었다.
다른 1축의 두루마리는 『신역화엄경』 중에 권44∼50까지의 내용을 필사한 것이다. 권44 앞에는 권43의 권미제(卷尾題: 각 권의 끝에 붙인 책의 제목)가 보이고 있고, 그 유례가 드물게 각 행마다 34자씩 배열한 것으로 보아 10권씩 한 축으로 묶은 것으로 보이며, 권41∼43까지가 떨어져 나간 것으로 생각된다.
2조각의 불보살도는 자주색 바탕에 금은니(金銀泥)로 그려져 있는데, 표면에는 초화문(草花紋)과 신장상(神將像)을, 뒷면에는 불보살도를 중심으로 누각, 사자좌 등이 묘사되어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유일한 회화자료이다.
50권 말미에 보이는 발문에 의해 이 사경이 754년( 경덕왕 13)에 황룡사의 연기(緣起, 烟起, 煙氣)가 발원하여 이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로써 화엄사의 창건자로 알려진 연기가 경덕왕 때의 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사경제작법과 이에 따른 의식 절차가 기록되어 있어, 사경이 신라시대부터 경전신앙 차원에서 성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밖에 사경에 참여한 필사자, 경심장(經心匠), 불보살화사(佛菩薩畵師), 경제필사(經題筆師) 등 사경 관련자 19명에 대하여 거주지, 인명, 관등의 순서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신라사회의 관등과 신분관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당시 장인(匠人)의 신분이 노예나 평민의 신분이 아니라, 적어도 평민보다 높은 신분층을 형성하였으며 관등을 가질 수 있는 하급 귀족층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당시 『 화엄경』 가운데서 『신역화엄경』의 사성은 신라 화엄사상의 새로운 전환이라는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사경은 신라시대 문헌으로서 국내 유일한 자료이며, 당시 불교사상뿐 아니라 일반 역사, 미술사, 사경제작에 따른 종교의식 등에 새롭고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는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