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방엿보기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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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첫날밤에 신랑과 신부의 모습을 보기 위하여 신방의 문 밖에서 문구멍을 뚫고 몰래 훔쳐보는 혼례의식. 혼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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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혼인 첫날밤에 신랑과 신부의 모습을 보기 위하여 신방의 문 밖에서 문구멍을 뚫고 몰래 훔쳐보는 혼례의식. 혼례.
내용

우리나라의 고유한 특수풍속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풍속의 기원과 변천양상에 대하여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우리나라 사회상의 변천과정과 인류학적 지식으로 미루어 추측할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에는 조혼이 성행하였다. 남자는 10살쯤, 여자는 14∼15살쯤 되면 혼인을 서둘렀다. 9살에 장가간 신랑이 적지않았고 여자가 18살쯤 되면 혼인이 늦었다고 걱정하게 되었다.

따라서 나이가 어리고 생활경험이 부족한 연소자들이 혼인의 의식과 절차에 올바로 대처하지 못하고 뜻하지 않은 실책과 과오를 범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첫날밤에 경험하지 못한 일을 당하여 공포와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신방을 뛰쳐나와 파경을 맞은 신부의 이야기, 첫날밤에는 벗긴다는 말을 들은 어린 신랑이 신부의 살갗을 칼로 벗겨 죽게 하였다는 이야기 등은 어린 신랑과 신부의 실책과 과오를 잘 말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어디에선가 생겼던 일들에 의거한 사실일 것이다.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신부집에서는 신방을 지켜보게 되고 이것이 점차 풍습화된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보면 신방엿보기는 조혼의 발생과 더불어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세계 각 민족 가운데에는 처녀성을 신성시하여 이를 파괴하는 자는 마령(魔靈)에 의하여 죽음을 당한다는 믿음을 가지는 민족이 있다.

이런 믿음은 원시문화단계에서는 어느 민족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우리 문화에도 이러한 믿음이 있어 혼인초야에 마령의 접근을 막기 위하여 여러 사람이 신방을 지키던 것이 신방엿보기로 변형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신방엿보기는 우리 민족이 혼인이라는 제도를 마련하게 되면서부터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어, 아득한 옛날에 그 기원을 두게 된다.

신방엿보기는 젊은 남녀와 장난치기 좋아하는 어린이들에 의하여 행해졌으며, 지각이 있고 점잖음을 중시하던 성인들은 이를 삼가하였다. 요즈음에는 가옥구조를 비롯한 여러 조건의 변화로 말미암아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참고문헌

『한국민속대관』(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0)
집필자
임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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