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용회(用晦). 호는 학사(鶴沙). 아버지는 신좌권(申佐權), 어머니는 양천허씨(陽川許氏) 허집(許集)의 딸이다. 8세에 여숙(閭塾: 마을서당)에서 수학을 시작하여 약관에 경전을 통달할 정도로 공부를 독실히 하였다.
1790년(정조 14) 사마시에 합격하고, 다음 해 서울에 갔을 때 서양학자가 중국으로부터 들어와서 천주교세가 확장되자 이를 근심하여 배척하는데 앞장섰다. 1804년(순조 4) 금부도사(禁府都事)가 되었다가 다음 해 금오랑 동부도사(金吾郞東部都事)가 되고, 그 후 사포서직장(司圃署直長), 돈녕부주부(敦寧府主簿)를 거쳐 다음 해 덕산현감(德山縣監)이 되었는데 이 곳은 궁벽한 해변인데다가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유리, 걸식할 즈음 부임하여 여러 면으로 진구(賑救)를 시행하고 민간 질고를 수시로 탐사하여 백성들의 안위를 살폈다.
1814년 마전군수로 발령되어 떠날 적에 덕산 백성들이 몰려와서 길을 막으며 우리는 누구를 믿고 살란 말이냐고 애원하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저서로는 『학사집(鶴沙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