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 건물이다.
기둥은 배흘림을 두었고, 바깥두리기둥 위에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놓고 그 위에 안팎 모두 3출목(三出目)인 공포(栱包)를 짜 올렸다. 그러나 다른 다포계 건물과는 달리 기둥 중심에 공포를 그대로 맞추지 않고 측면 귀기둥 위에서부터 같은 간격으로 분할, 배열하였다.
귀공포 위에는 원숭이 모양의 조각을 세워 추녀를 받치고 있어서 특이한데, 강화도 전등사의 대웅전에도 이러한 장식이 있다.
첨차는 메뚜기머리 모양이며 공안(空眼 : 건축물에서 구멍·총혈 등의 총칭)을 뚜렷하게 표현하였다. 첨차의 끝은 몽똑하게 밑으로 처져 있어 다포계 초기의 수법을 보여 준다.
공포 위 한대(限大 : 귀기둥 위에서 도리에 45° 각도로 건 쇠서)와 보뺄목[樑頭 : 기둥을 뚫고 나온 보의 끝머리]도 3분두(三分頭) 형식으로 다듬었다. 마룻보 위에는 기둥대공과 ‘人’자 대공을 겸하도록 간결하게 짰다.
천장은 우물천장이고 바닥은 마루를 깔고 불단(佛壇)을 놓았다. 보광전은 문살로 아름답게 장식하였는데, 정면의 문들은 가운뎃칸에 모란과 연꽃을 뚫어 새겨 꽃살문을, 양 옆칸에는 격자무늬를 뚫어 새겨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단청은 18세기에 다시 칠하였으나, 아직도 일부에는 고래단청이 남아 있어 은은하고 무게있는 특성을 잘 보여준다. 이 건물은 1374년(공민왕 23)에 건립되었는데, 그 시기에 지어진 석왕사(釋王寺)의 호지문(護持門)·응진전(應眞殿), 개성 남대문, 평양 보통문 등과 양식적으로 같은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