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3월에 선사주거지ㆍ토광묘 등과 함께 발견되었다. 유적이 발견된 곳은 월암산에서 정북으로 뻗어내린 구릉의 남쪽 경사지이며 8기의 옹관묘와 함께 토광묘 6기, 선사주거지 2개소가 조사되었다.
옹관은 토광묘와 혼재되어 조밀하게 분포되어 있는데 이는 강서군 태성리에서 발견된 토광묘 및 옹관묘군과 비슷한 양상이다. 제6호 옹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100m 이내에 있으며 토광묘와의 거리는 불과 2∼4m로 접근되어 있어 토광묘에 부수된 것으로 보인다.
수평으로 매장된 옹관은 서로 아가리를 맞댄 전형적인 합구식(合口式)옹관이다. 옹관의 매장은 옹관의 크기보다 약간 넓게 장타원형의 수직광을 파고 묻었으며 표토로부터 50㎝ 정도의 깊이에서 바닥이 드러났다.
옹관이 놓여 있는 방향은 토광묘와 동일한 서남향이며 옹관의 크기는 대소 2종으로 큰 것은 103㎝이며 작은 것은 80㎝ 미만이다. 옹관의 형태는 둥근 항아리형이며, 삿무늬[繩蓆文]가 찍혀 있다.
옹관에는 부장품이 없고 토광묘에는 토기와 철제이기(鐵製利器)가 부장되어 있었다. 이 옹관묘는 토광묘와 같은 시대의 것으로 보이며 그 크기로 보아 소아용이거나 2차매장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