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와우리 옹관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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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철기와 석기 등이 출토된 독무덤. 옹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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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철기와 석기 등이 출토된 독무덤. 옹관묘.
내용

영산강의 하류 지역인 시종면 일대는 옹관고분(甕棺古墳)이 가장 밀집된 중핵지대로서 100여 기가 넘게 분포하고 있다. 와우리 옹관묘도 그 중 하나이며 규모가 작은 봉토로 이루어진 10기가 무리지어 있다.

유적은 우정마을의 남쪽에 위치한다. 이 곳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낮은 구릉지대로 형성되어 있다. 이 중 3개의 봉토에서 각각 하나의 독널[甕棺]만이 조사되었다.

이 옹관고분은 영산강유역 특유의 옹관고분이 일반적으로 하나의 봉토 안에 여럿의 독널이 들어 있는 공동묘적 성격을 띠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독널의 매장도 봉토의 성토층(盛土層)이 아니라 지하에 타원형의 구덩이[土壙]를 파고 안치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조사된 독널 중 2기는 밑동에 원형돌기가 있고 목의 흔적이 약간 남아 있는 이른 시기의 독이다. 1기는 밑동에 음각 원문(圓文)이 새겨진 영산강유역의 전형적인 U형 독이다. 독널은 모두 이음식[合口式]이며 크기는 230∼250㎝ 정도이다. 구운 온도가 낮은 연질(軟質)이고 두께도 얇고 고른 편이다.

출토유물로는 토기와 철기 및 약간의 구슬이 있다. 토기는 모두 단지[壺]나 항아리이며 연질에 속한다. 철기로는 손칼ㆍ낫ㆍ도끼ㆍ덩이쇠 등이 있다. 덩이쇠는 길이 5㎝, 너비 1㎝ 미만의 매우 작은 것으로 매납용(埋納用)으로 특별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유적의 연대는 독널이나 껴묻거리로 미뤄볼 때, 영산강 유역의 옹관고분 중 비교적 이른 시기에 속하는 4세기 무렵으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영암와우리옹관묘(靈巖臥牛里甕棺墓)』(국립광주박물관,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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