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현재 ┐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 대문과 측간이 있는데 상량문에 안채는 1914년에, 사랑채는 1932년에 입주○상량되었다 하며 대문과 측간은 최신작이다.
담장도 새롭게 쌓아 일신했는데 일신이 지나쳐서 사랑채 정면 4칸 측면 2칸중 향좌측끝 내루(內樓)에서는 다락집의 머름을 다 없에고 창 대신에 궁판이 있는 네짝 분합을 설치하여 큰 변화를 초래하였다.
신식 사람들의 기막힌 자의인데 놀라운 변모라고 할 수 있다. 누마루 우측에 방과 앞퇴, 다음간이 대청, 다음이 방과 앞퇴이다. 겹처마의 팔작기와지붕이다. 안채는 정면4칸 측면간반통 틈채에 부엌과 곳간이 부설되었다.
안방과 대청이 연이어져 있는데 대청 앞벽에 문얼굴 들이고 유리창문을 내어 여닫게 되었는데 미닫이이다. 우리나라 근대를 대표하는 언론인 안재홍이 태어나 살던 집이다.
일제 강점기에 언론을 통하여 독립사상 고취에 진력하였고 광복 이후에는 국민당을 결성하여 대표자가 되기도 하였는데 6○25때 납치되어 북쪽에서 생애를 마쳤다.
생가는 경기도 지역 특성인 고자형에서 벗어나 사랑채를 ㅡ자형으로 하였다. 이는 일견해서 특성인 듯이 보이나 사랑채 현재 모습에는 여러 의문점이 있다.
장마루 깐 점, 내루에 머름대 제거하고 궁판이 달린 네짝 분합문 설치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개조이다. 원래 모습에서 변모되었다고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