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백허(伯虛), 호는 겸재(謙齋). 안경(安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안돈후(安敦厚)이고, 아버지는 좌의정 안당(安瑭)이다.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로 경원부사 이영희(李永禧)의 딸이다.
1513년(중종 8) 진사시에 합격하고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를 거쳐, 1517년 8월 장의(掌議)로 있으면서 정몽주(鄭夢周)의 문묘배향과 소격서(昭格署)의 폐지 등을 건의하였다. 1519년 아우 안처함(安處諴)·안처근(安處謹)과 함께 현량과(賢良科)에 삼등으로 급제하였으나 모친상을 당하여 벼슬을 그만두었다.
1521년 상복을 벗고 처가에 있으면서 이웃에 사는 시산정(詩山正) 이정숙(李正叔)·권전(權磌) 등과 더불어 담론하다가 세상을 비판하는 말을 많이 하였는데, 그 중 군주 측근의 간신을 제거하여 국세를 바로잡고 사림을 위로해야 한다는 등의 언사가 있었다.
이 때 송사련(宋祀連)도 함께 담론하였는데, 송사련은 남곤(南袞)·심정(沈貞)에게 아부하여 상을 얻으려고 자기의 처남인 정상(鄭鏛)을 시켜, 간신은 곧 남곤·심정을 지칭하는 것이라 하며, 그 당여의 증거물로 안처겸의 모친상시의 조문록 및 역군명부(役軍名簿)를 가지고 고변하게 하였다. 이로써, 대신을 살해하려 하였다는 죄목으로 아우 안처근과 함께 처형을 당하였다. 1540년에 신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