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1책. 목판본. 199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102년(숙종 7) 흥왕사(興王寺)의 간기(刊記)가 있다. 흥왕사는 대각국사(大覺國師)의천(義天)이 1101년까지 속장(續藏)을 간행하였던 곳이다. 그런데 이 책은 대장경의 주석서인 속장이 아니고 일반 경전인데 대장경의 천자함(千字函: 대장경을 보관하는 함의 순서를 千字文에 따라 붙인 것) 표시인 ‘鞠(국)’자가 새겨져 있다. 일반적으로 천자함 표시는 대장경 간행 때만 한정되고 개별 경전 간행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 판본은 대각국사가 입적한 다음해에 간행된 것인데, 국사 생전에 쾌유를 빌기 위하여 이 경전의 간행을 시작하였고, 이때 저본(底本)의 천자함 표시를 그대로 새긴 경우로 생각된다. 이 책은 비록 속장을 간행한 간기가 있으나 속장과는 판식이나 성격과 지질이 다르며, 현존 판본의 상태로 보아 이 당시의 간행으로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이 판본은 1102년의 판본을 저본으로 후대에 번각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번각 수법이 뛰어나서 왕실이나 국가 기관에서 간행하였을 가능성이 짙다.
그런데 이 판본의 번각(飜刻)으로 추정되는 동일한 경전의 판본이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를 보면, 매 항(行) 15자씩으로 글자 수는 동일하게 배열되어 있는데, 성종의 계비인 자순대비(慈順大妃)의 발원에 의하여 1528년(중종 23)에 봉은사에서 중간한 판본이다. 여기에는 1459년(세조 5) 어제발(御製跋: 왕의 명령에 의해 조성했다는 발문)이 붙어 있다. 여기에서 세조 5년에 간행하였던 판본을 저본으로 하여 번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이 판본은 1102년 흥왕사본을 가지고 1459년 어제발을 붙여 번각했던 판본일 가능성이 짙으나, 여기에는 어제발이 없으므로 단정할 수 없다. 또한, 고려 고종 때의 대장경판각이 있었기 때문에 이 경전의 고려시대 복각(覆刻)의 가능성도 희박하나 고려시대 판본의 격을 갖추고 있으므로, 간행 시기는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로 추정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