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신앙은 약사여래를 신앙 대상으로 삼았다. 약사여래는 동방의 이상향인 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에 나타나는 부처님으로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열두 가지 대원(大願)을 세운 분으로 묘사된다. 이 열두 가지 대원 중 구병(救病), 현세적 복락, 고난의 해탈 등이 현실의 고통을 벗어나려는 대중심리와 결부함으로써 많은 호응을 얻었다. 약사신앙이 자연스럽게 사찰 안에 수용되면서, 약사전이 건립되었다. 그리고 약사신앙은 사방불신앙으로 발전하였고, 방위신앙과의 밀접한 관련하에서 독특한 전형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약사신앙은 달마급다(達摩笈多)가 번역한 『약사여래본원경(藥師如來本願經)』, 현장(玄奬)이 번역한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藥師瑠璃光如來本願功德經)』, 의정(義淨)이 번역한 『약사여래칠불공덕경(藥師如來七佛功德經)』 등의 세 경전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었다.
약사여래는 동방의 이상향인 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에 나타나는 부처님으로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열두 가지 대원(大願)을 세운 분으로 묘사된다. 이 열두 가지 대원 중 구병(救病), 현세적 복락, 고난의 해탈 등은 중요한 명제가 담겨 있어 현실의 고통을 벗어나려는 대중심리와 결부함으로써 많은 호응을 얻었다.
특히, 그 신앙은 단적이고 현세 이익적인 경향을 띠기 때문에 민간신앙으로서는 깊은 설득력을 지니게 되었다. 신라에서는 선덕여왕 때 밀본(密本)이 『약사경』을 읽어 왕의 병을 고쳤고, 755년(경덕왕 14)에 월성(月城)의 동쪽 분황사(芬皇寺)에 30만7600근의 거대한 약사여래상을 안치하였다. 이 약사여래는 사천왕(四天王)과 팔부신중(八部神衆) 및 십이지신(十二支神)을 그 권속(眷屬)으로 삼는다.
통일신라기의 석탑에 그 약사여래의 권속을 조각하는 풍습이 생겨난 것은 이 약사신앙의 한 단면이다. 각처에서 약사여래나 혹은 그 권속을 새긴 불상 · 벽화 등이 발견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유물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은 경주 남산 칠불암(七佛庵)의 동방불(東方佛), 백률사(栢栗寺) 출토 청동 약사여래입상, 굴불사지(掘佛寺址) 석조 사면석불상(四面石佛) 가운데 동방불, 남산 윤을곡(潤乙谷) 마애여래좌상, 경주경찰서 소재 사방불석탑의 기단부 등이다.
조형예술로 표현된 약사여래상은 전부 신라 통일 이후의 작품이다. 경덕왕대의 약사여래상에 대한 기록과 대비시켜 볼 때, 신라의 약사신앙은 680년 이후에 유행하였거나 경덕왕대인 8세기 중반으로 볼 수도 있다. 『약사경』에 대한 교학적 연구는 신라통일기의 약사신앙에 대한 이론적 토대의 구실을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동시에 그것은 이미 신라 하대에 이르러 약사신앙이 신라불교신앙의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시사하는 일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서목(書目)으로서 『약사경』에 관한 연구는 다음과 같다. 이 가운데 백제 의영(義榮)을 제외한 나머지 신라의 학승(學僧)들은 모두 통일 이후에 활약한 인물들이다. 그 전시대에 활약하던 대표적인 저술가로서 원효(元曉) · 원측(圓測) · 신방(神昉) 등의 서목에서는 『약사경』 관계의 문헌목록이 전혀 없음을 비추어볼 때, 약사신앙은 신라 하대에 이르러 비로소 민간신앙으로서 정착하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약사신앙은 복덕과 장수, 건강과 행운을 기약하는 타력적(他力的) 현세 이익신앙이었기 때문에 특히 민간신앙으로서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고려나 조선시대에 이르면 이 약사신앙만이 강조되는 흔적은 별로 없다. 그 신앙의 특성이 병고에 허덕이는 중생의 제도라는 특유한 상황설정에 국한되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약사경』을 독송하는 모임이 열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이 약사신앙이 자연스럽게 사찰 안에 수용되면서, 사찰 안의 중요한 건축물인 약사전(藥師殿)이 건립되었다.
이와 같은 실리적 측면 외에 우리 나라의 약사신앙은 동방 유리광세계의 현현을 목적으로 하는 특징을 지닌다. 우리 민족은 약사여래가 있는 동방을 동국(東國), 곧 우리 나라로 수용하였다. 그리고 약사신앙은 사방불신앙으로 발전하였고, 방위신앙(方位信仰)과의 밀접한 관련하에서 독특한 전형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약사신앙은 대중적 경향 때문에 현재에도 여전히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다만, 우리 나라 불교의 타력신앙이 어느 특정한 불보살에 한정되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여러 신앙의 한 부분으로서 수용되고 있다. 대규모의 사찰에 언제나 약사전이 따로 건립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현재 우리 나라의 사찰에서는 약사회(藥師會)라는 모임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모임 또한 병으로부터의 완치라는 쪽으로 크게 기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