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권 13책. 필사본. 18권 9책이 낙질되어 서·발·부록이 없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5·16에 소(疏) 16편, 응제록(應製錄)으로 대왕대비전·종묘·영녕전·경모궁·사직고유문, 사제문(賜祭文) 2편, 권19에 제발(題跋) 11편, 권20에 비(碑) 3편, 묘갈명 1편, 묘지명 3편, 제문 18편, 애사 2편, 유사·행록 3편, 명(銘)·찬(贊) 3편, 권21에 잡저 12편, 권22에 경연강의(經筵講義)·옥당고사(玉堂故事), 권25에 잡언 28편, 권26에 약산록(藥山錄)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홍문관부수찬진소회소(以弘文館副修撰陳所懷疏)」는 당시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하는 과정에서 간혹 예절에 결여되는 사례를 전제하고, 대신 한 사람의 거취에 지나친 대우를 한 데 대해 부당하다고 지적한 글이다.
「사사간원정언겸진소회소(辭司諫院正言兼陳所懷疏)」는 자신의 직책을 사임한다는 내용의 소이다. 아울러 국가의 기강 확립도 주장하였다.
「사정언겸진소회소(辭正言兼陳所懷疏)」는 당시 내탕재(內帑財) 활용의 허점을 지적하고, 관고를 관장하는 관리를 엄선해 사용에 흐르지 않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전영변부사인북적변론서사소(以前寧邊府使因北賊變論西事疏)」는 당시 청북의 도적이 침입해 여러 고을이 변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수령 중에 기관(棄官), 투항하는 자가 있음을 통분하고, 이와 함께 흉년으로 민생 문제가 난관에 봉착했음을 지적, 조정의 무휼지책이 시급하다고 주달하는 글이다.
「청행야대계(請行夜對啓)」는 야간에 경연강의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요청의 글이다. 잡저의 「사론상(史論上)」은 사관들의 직필을 강조한 글이다.
「명이자설(名二字說)」은 두 아들의 이름을 치우(致愚)·치로(致魯)라 지은 데 대한 해설이다. 「경연강의」는 28조로 1802년(순조 2) 3월 29일부터 1809년 7월 20일까지 강의한 내용이다. 「양동전(梁同傳)」은 홍경래(洪景來)의 난 때 전공을 세운 양동의 충직성을 찬양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