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연림(大延琳)이 요(遼)에 반기를 들었을 때 동경장군(東京將軍)으로서 이에 참가하였다. 1029년(현종 20)에 당시 요의 동경사리군상온(東京舍利軍詳穩)이자 발해의 지배층 후손이었던 대연림이 흥요국(興遼國)을 세우고 요와 대결할 때, 대연림에 협력하는 발해후손과 요의 힘을 두려워하여 반대하는 발해후손들이 있었다.
즉, 대연림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대연정(大延定)·고길덕(高吉德)·유충정(劉忠正)·대경한(大慶翰) 등은 대연림을 도와 고려에 도움을 청하러 가는 등 활약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당시 상황이 다섯 차례에 걸친 고려에 대한 도움요청도 성과가 없고 요양성(遼陽城) 안에서의 전투도 역시 승산이 없게 되자, 1030년 8월 요와 내통하고 성문을 열어주어 대연림 무리가 패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이후 요 성종(聖宗)의 조칙에 의하여 요에 협조하였던 발해후손들은 요의 벼슬을 받았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강제이민의 대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