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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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도서 / 풍덕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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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 연간에, 왕명으로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55책으로 편찬한 전국 읍지.
내용 요약

『여지도서』는 1757년∼1765년에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성책한 전국 지방지이다. 읍지라고도 한다. 총 55책이며 필사본이다. 295개의 읍지와 17개의 영지, 진지 1개 등 313개의 지지가 수록되어 있다. 당시 행정구역 중 39개 읍의 읍지가 누락되어 있다. 편찬된 지 200년이 지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개편을 위해 왕명으로 각 읍에 읍지를 올려보내도록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읍지마다 거리와 방위 등이 정확히 기록된 대축척지도가 첨부되어 지도와 읍지가 밀접하게 결부돼 있고, 면·리 또는 읍별로 가호수와 남녀 인구수를 상세하게 기재한 점이 특징이다.

목차
정의
조선 영조 연간에, 왕명으로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55책으로 편찬한 전국 읍지.
내용

55책. 필사본. 295개의 읍지와 17개의 영지(營誌 : 監營誌 6, 兵營誌 7, 水營誌 3, 統營誌 1) 및 1개의 진지(鎭誌) 등 총 313개의 지지가 수록되어 있다. 제1책∼제5책 : 경기도, 제6책∼제13책 : 충청도, 제14책∼제17책 : 강원도, 제18책∼제21책 : 황해도, 제21책∼제30책 : 평안도, 제31책∼제35책 : 함경도, 제36책∼제49책 : 경상도, 제50책∼제55책 : 전라도로 결책되어 있다.

당시의 행정구역을 상고하면 읍지가 수록되지 않은 결읍(缺邑)이 보이는데, 전라도 · 경상도 · 경기도 · 충청도 등지에서 39개읍의 읍지가 누락되었다. 경기도에서는 한성부(漢城府) · 개성부(開城府) · 파주목(坡州牧) · 고양군(高陽郡) · 적성현(積城縣) · 수원부(水原府) · 안성군(安城郡) · 양천현(陽川縣) · 김포군(金浦郡) 등 9개읍 및 경기도 총론 · 경기도지도 · 경기 감영 · 병영의 지지, 충청도에서는 정산현(定山縣) · 온양군(溫陽郡) · 청안현(淸安縣) 등 3개읍의 읍지가 결여되어 있다.

또한 전라도에서는 남원부(南原府) · 담양부(潭陽府) · 제주목(濟州牧) · 대정현(大靜縣) · 정의현(旌義縣) · 만경현(萬頃縣) · 임피현(臨陂縣) · 정읍현(井邑縣) · 전주부(全州府) · 익산군(益山郡) · 김제군(金堤郡) · 금산군(錦山郡) · 고부군(古阜郡) · 진산군(珍山郡) · 금구현(金溝縣) · 여산부(礪山府) 등 16개읍 및 전라도총론 · 전라도지도 · 감영 · 우수영 · 좌수영 · 병영의 지지가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경상도에서는 울산부(蔚山府) · 양산군(梁山郡) · 영천군(永川郡) · 흥해군(興海郡) · 사천현(泗川縣) · 삼가현(三嘉縣) · 의령현(宜寧縣) · 하동부(河東府) · 산음현(山陰縣) · 안음현(安陰縣) 등 11개읍의 읍지가 결본이다.

각 읍지의 내용구성은 강역(疆域) · 방리(坊里 : 戶口 포함) · 도로(道路) · 건치연혁(建置沿革) · 군명(郡名) · 형승(形勝) · 성지(城池) · 관직(官職) · 산천(山川) · 성씨(姓氏) · 풍속(風俗) · 능침(陵寢) · 단묘(壇廟) · 공해(公廨) · 제언(堤堰) · 창고(倉庫) · 물산(物産) · 교량(橋梁) · 역원(驛院) · 목장(牧場) · 관애(關阨) · 봉수(烽燧) · 누정(樓亭) · 사찰(寺刹) · 고적(古蹟) · 총묘(塚墓) · 진보(鎭堡) · 명환(名宦) · 인물(人物) · 한전(旱田) · 수전(水田) · 진공(進貢) · 조적(糶糴) · 전세(田稅) · 대동(大同) · 봉름(俸廩) · 군병(軍兵) 등으로 되어 있다.

『여지도서』의 편찬은 1757년 홍양한(洪良漢)이 임금에게 아뢴 것이 계기가 되었으며, 왕명에 따라 홍문관에서 팔도 감사에게 명을 내려 각 읍에서 읍지를 올려보내도록 하였다. 그 뒤 김응순(金應淳)과 이은(李溵)이 홍문관에 있을 때 이를 개수하였다고 하나, 현존하는 『여지도서』는 누락된 군현이 많고 결책 순서 등으로 보아 홍문관에 비치되었던 본이 아니라고 추측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 읍지의 호구조의 기준 연도가 1759년(己卯帳籍)인 점으로 볼 때, 1760년 이후에 수집된 읍지들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여지도서』의 편찬 목적은 편성된 지 270여 년이 지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개수(改修) · 속성(續成)에 있었다. 『여지도서』는 『동국여지승람』을 기초로 하면서 방리 · 제언 · 도로 · 전결(田結 : 旱田 · 水田) · 부세(賦稅 : 進貢 · 糶糴 · 田稅 · 大同 · 均稅) · 군병(軍兵) 등의 항목이 첨가되어 사회 · 경제적인 내용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체제는 16세기 후반이래 대두된 새로운 읍지 편찬의 경향을 정리하고 종합한 것으로 18세기 읍지의 종합적 성격을 대표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방리 · 도로 · 부세에 관한 제 조항 및 각 읍 읍지의 첫머리에 수록된 채색지도이다. 일반적으로 읍지의 제일 첫머리에 기재하던 건치연혁조보다도 방리조를 앞에 위치시킴으로써 당시 읍지 편찬자들이 이를 중시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일반 읍지의 방리조에는 면(또는 里)의 명칭과 위치를 기록하는 것이 보편적인데, 『여지도서』에는 면 · 이 또는 읍별로 가호수[編戶]와 남녀 인구수를 상세하게 기재한 점이 특징이다.

『여지도서』에 보이는 또 하나의 변화는 도로조이다. 도로조는 이 시기에 신설된 항목으로서, 그 위치도 건치연혁조보다도 앞에 설치되었다. 이러한 항목 배열 순서 및 내용의 상세함을 통하여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도로가 중시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 상업의 발달과 더불어 도로의 중요성이 커지고, 지역간의 교류가 증대되면서 지역간 및 지역내의 구체적인 유통망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조세 수취와 관련된 진공 · 조적 · 전세 · 대동 · 균세 · 봉름 등이 각각 독립 항목으로 설정되는 변화가 보인다. 조세량의 정확한 파악과 수납은 국가의 지방 통치력 및 중앙 재정에 관계되는 것으로서 읍지에서 이에 관한 기록의 비중이 18세기 중엽 이후 점차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여지도서』에는 읍지 편찬의 역사에서 중요한 진전이 이룩됨을 볼 수 있다. 각 읍의 첫머리에 각 읍별 채색지도가 부착되어 있는 점이다. 여지도(輿地圖)와 서(書)의 결합이라는 의미로 『여지도서』라는 서명을 붙일 정도로 지도가 중시된 것이다. 각 읍지마다 거리와 방위 등이 정확한 대축척지도가 첨부되어 지도와 읍지가 밀접하게 결부된다. 읍지의 내용을 지도로 도식화함에 따라 읍지의 내용에 정확성이 증가되고, 지도의 이용으로 당시 사람들의 공간적 인식에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여지도서』는 공시적 기록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전국에 걸쳐 동일한 시기에 작성된 읍지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18세기 중엽의 지방 사회를 전국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국교회사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1973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영인, 간행하였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게재된 읍지도(邑地圖)에 관한 연구」(노희방, 서울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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