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는 조선 후기 실학자 홍대용이 청나라에서 여러 계층의 인사와 만나 필담한 내용을 수록한 견문록이다. 6권 6책으로 그의 문집 『담헌서』 외집 7∼10권에 있다. 1766년 1월부터 3월까지 약 3개월간 청나라에서 견문한 바를 기록하였다. 전체적으로는 관광·참관기, 문물제도, 사행 노정기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필담의 내용은 경서의 뜻, 역사와 문예, 유·불·도 등에 대한 것이다. 외집 7권에는 천문·역법에 정통한 독일인 선교사와의 필담도 있다. 이 책은 사상·생활면에서 청 문화에 대한 홍대용의 높은 관심을 보여준다.
6권 6책. 필사본. 1765년(영조 41)에 동지 겸 사은사(冬至兼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인 작은아버지 홍억(洪檍)의 수행원으로 청나라에서 견문한 바를 기록한 것이다. 1766년 1월 초부터 3월 중순까지 약 3개월간의 기록으로 그의 문집인 『담헌서(湛軒書』의 외집 7∼10권에 들어 있다.
그 내용은 외집 7권은 22개의 항목이 수록되었으며, 대부분 여러 계층의 인사와 만나 필담한 내용이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유포문답(劉鮑問答)」인데, 유송령(劉松齡, Halberatein,Von A.)과 포우관(鮑友管, Gogeisl,A.)과의 문답이다. 이들은 모두 독일인 선교사로 천문 · 역법에 정통해 각각 흠천감정(欽天監正)과 부정(副正)으로 있었다.
이들을 만난 것은 서양 역법에 대한 저자의 흠모와 조정에서 이들로부터 서양의 역법을 배우고 천문기계를 구입해 오라는 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천문대와 망원경 등을 구경하고 그에 관한 서양 서적도 구입, 귀국 후에는 직접 제작하기도 하였다.
외집 8권은 7개의 항목으로 되어 있다. 산해관(山海關)으로부터 북경에 이르는 도중, 하급관리와 상인을 만나 그들의 교육정도 · 생활태도 · 풍속 등 보고 들은 것을 적거나, 북경의 성 내외를 돌아다니며 시가 · 서점 · 명소에 대해 쓴 관광 기록이다.
외집 9권은 모두 32개의 항목으로 되어 있다. 만리장성 · 태학(太學) · 문묘 등의 참관기, 관상대 · 천주교당 · 불사(佛寺) · 고서 · 골동품 · 화초의 종류 및 여러 황제의 이궁(離宮) · 동물원 · 민속과 지방 풍물에 대한 기록, 사행이 청나라의 예부(禮部)에 국서를 전달하거나 신년에 조참(朝參)하는 의식과 신년의 여러 가지 놀이에 대한 기록 등 다양하다.
외집 10권은 15개의 항목으로 되어 있다. 세폐(歲幣)를 청나라에 헌납하는 광경과 사람의 눈을 속이는 기술에 대한 기록, 연극을 구경한 소감, 북경 시가의 점포 · 서점 · 전당포 · 주점을 구경하고 그 규모와 상도(商道) · 물정에 관한 것, 지방 곳곳의 불사(佛寺)를 구경한 소감 등을 기록하였다.
이외에 음주 · 다도 · 과채(果菜) 등 생활 관습, 궁궐로부터 일반 민가에 이르기까지 그 가옥 제도와 실내 장식, 주련(柱聯)에 대한 것, 의복 제도 · 거제(車制) · 선제(船制)에 대한 것, 병기 · 악기에 대한 제도 및 사용법, 여러 가지 가축과 마정(馬政) · 우정 · 농정에 관한 것도 기술하였다.
또한, 조선 사신이 북경의 관사에 머무는 동안 매일 급식하는 음식의 종류와 그 수량, 중국의 국토 면적과 미곡 보유량, 부(府)와 주(州)의 수, 은의 보유량, 각 성(省)의 북경과의 거리, 조선 사행이 북경에 이르기까지의 거리와 숙박지를 적은 노정기 등으로 되어 있다.
당시 조선에서는 중국과의 사행을 통해 국제 정세를 판단하고, 또한 중국학을 수용해 사회 · 경제면에 반영하려는 기운이 일고 있는 때였다. 그러므로 그는 사상이나 생활면에서 다양한 관심을 가졌으며, 청 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다.
한편, 그는 북경에서 항저우[杭州]의 선비 육비(陸飛) · 엄성(嚴誠) · 반정균(潘庭筠) 등과 많은 학문적 필담을 나누고 결의형제를 맺어 귀국한 다음에도 계속 서신을 왕래하였다.
그 필담과 서신의 내용은 주로 경의(經義), 두 나라의 역사와 문예, 주 · 육(朱陸)의 차이점, 유 · 불 · 도(儒佛道)의 비교 등 매우 다양하다. 서신은 문집 1권에, 필담은 외집 2, 3권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