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경상북도 민속자료(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좌부승지에 증직된 박영(朴暎)이 1656년경에 창건하였다 하며 현재 대문칸 · 강당 · 사당과 영사정(永思亭)이 경내에 있다.
박영이 증조부 박종린(朴從麟)을 위하여 건축하였는데 박종린은 박눌(朴訥)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 중종 11년(1516)에 진사, 중종 27년(1532)에 별시 문과에 급제, 홍문관 교리 이조정랑을 역임한 학자로 낙향하여 금당곡(金塘谷)에 터를 잡고 입향시조가 되어 함양박씨촌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인격이 고매하여 인근에서 칭송을 들었고 정랑공파(正郞公派)의 파조(派祖)가 되었다. 전국 십승지지(十勝之地) 중의 하나인 금곡 오미봉(五美峰)을 등뒤에 두고 남향한 터전에 정갈하게 자리잡았다.
금곡 북촌마을에서 본다면 이 건물군이 핵심적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원래 영사정은 없었던 것을 1세기 전쯤에 부설하여서 다른 건물 배치에 축(軸)에서 벗어나 있다.
대문은 3칸의 소슬대문이며, 강당인 추원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사당의 신문(神門)은 평삼문형이고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간반통의 맞배지붕형이며 영사정은 정면 3칸 측면 간반통이고 팔작기와지붕 구조이다. 구조나 의장이나 배치가 가장 보편적인 것이어서 별다른 특색을 찾기 어렵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